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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28 17:16 수정 : 2005.06.28 17:16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우리 어릴 적 흙장난하며 부르던 노래에는 집에 대한 전통적 관념과 주택문제 해결책이 숨어 있다. 나눔과 공개념, 교환의 경제가 담겨있다. 헌 집을 넘겨주고 새 집을 장만하는 과정은 주택경제학에서 여과 이론으로 설명된다. 소득이 높아지면 좀 더 나은 집으로 이사가고, 그 집은 한 단계 낮은 소득층에게 넘겨지는 현상이 잇달아 일어나는 것이다.

그 이론이 완전히 빗나가는 곳이 한국 주택시장이다. 헐어내는 집이 너무 많고, ‘건설족’과 다주택 소유자가 공급-수요 양쪽에서 시장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건축 등으로 허무는 주택은 해마다 7만가구나 된다. 서울시 멸실주택 평균 사용연수는 20년 4개월로 보통 50년이 넘는 선진국과 비교가 안된다. 잘 지은 아파트를 이십몇년만에 때려부수는 곳은 한국 밖에 없다. 이런 광풍의 출발점은 1989년 5대 신도시 건설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건설업계의 끈질긴 수익보장 요구가 용적률 등 건축규제 완화와 분양가 인상으로 수용됐던 것이다. 손해난다던 건설업계 주장이 과장됐음은 재벌 건설사 급성장과 우방 청구 건영 한보 우성 등 아파트재벌 탄생으로 입증됐다. 한번 풀린 건축규제는 옛 아파트나 단독주택들도 남아나지 않게 했다. 고밀도 단지를 조성하면 집주인과 건설업체가 떼돈을 벌기 때문이다.

집값이 폭등할 때마다 공급 위주 대책이 선호되는 것은 세금처럼 자산소득자의 반발을 사지않으면서 ‘건설족’을 만족시키고 경기도 부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언론의 전폭 지지는 기득권 옹호가 독자 확보와 광고 유치에 유리할 뿐 아니라 언론인 상당수가 자산소득자 반열에 들고 강남과 신도시에 살기 때문이라 말할 도리밖에 없다. ‘수요공급 원리’ 운운 하지만, 부동산은 사과 같은 일반 상품과 다르다는 상식을 설마 모를까? 일반 상품은 한 곳에 공급이 몰리면 값이 떨어지지만, 주택과 상가는 모여서 시간이 흐르면 더 큰 이익이 발생한다. ‘집적(集積)의 이익’이 바로 그것이다. 헌 집이 새 집보다 비싼 이유도 주택은 토지와 분리될 수 없는 재화이고 집이 들어서면 땅값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5대 신도시가 고작 4년 정도 버티다가 집값 폭등의 진원지 구실을 한 것도 그 탓이다.

주택시장의 이런 특성은 수요관리의 절실함을 일깨운다. 수도권 주택보급률은 94%라지만, 아파트 분양을 위한 ‘가짜 가구분할’을 고려하면 100%를 훨씬 넘어섰을 것이다. 그런데도 서울에서 열 집 가운데 여섯 집이 남의 집에 살고 있다면, 공급이 아니라 가수요가 문제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내놓는 저소득층 집까지 부유층이 딱지로 사모으는 판이니 자가보유율이 더욱 떨어진다. 보유세 실효세율이 선진국 10분의 1 수준이니, 118만 가구가 3~20채씩 집을 갖고 막대한 불로소득을 올리는 투기천국이 될 수밖에 없다. 실효세율은 차-차-차기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2017년에야 1% 수준으로 올리겠다니 그 의지를 알조가 아닌가? 수도권 인구집중을 막는 것이 수요관리의 상책임에도 대통령과 여야가 경쟁하듯 정책의지를 흔드는 말들을 한다.

청와대 참모들이 ‘공급 우선론’에 제동을 걸자, 보수언론은 ‘시장 때려잡고’ ‘국민과 싸우자는 거냐’며 아우성이다. 투기꾼도 ‘국민’이겠지만 싸잡아 말하지 말기 바란다. 헌 집도 새 집도 다 갖겠다는, 두꺼비만도 못한 투기꾼, ‘두꺼비 집’의 공개념도 없는 정치인 관료 언론인들이 정책을 좌우하는 한, 집값 폭등은 재발, 또 재발한다. 그때마다 자산소득 계층은 속으로 열광하고, 빈부격차는 성큼성큼 벌어진다.

이봉수/ 런던대 박사과정·경제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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