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29 20:11
수정 : 2005.06.29 20:11
프랑스와 네덜란드 유권자들이 지난 5월 말과 이달 초 유럽연합 헌법을 확실히 거부했다. 두 가지 우려에서였다. 유럽연합이 자신들의 통제력을 벗어난 권력을 얻고 있으며, 지금의 진로가 자신들의 경제적 안정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두 나라 유권자들의 판단은 절대적으로 옳다. 서유럽 민주주의 국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사회복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들 나라는 지난 60년에 걸쳐 생산성 향상을 전체 국민들이 버젓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데 사용해 왔다. 넉넉한 퇴직급여, 어린 자녀를 둔 가족에 대한 지원, 보편적인 의료보험, 관대한 실업급여, 강력한 고용 보호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최근 몇년 전부터 유럽의 복지국가들이 공격을 받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비롯해 많은 경제학자들은 유럽의 복지국가 체제가 세계경제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보다 너그러운 유럽의 사회복지 제도들이 성장을 질식시키고 높은 실업률을 낳고 있다는 주장이다. 높은 실업률은 세수를 감소시키고 재정지출은 늘린다는 점에서 복지국가의 유지를 한층 힘들게 한다. 그러나 유럽 경제의 이런 문제가 복지국가의 지속 불가능성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아무런 특별한 연관성이 없다. 예를 들면, 유럽에서 경제 문제가 가장 심각한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사회복지 체제는 매우 미흡하다. 반면 덴마크와 스웨덴은 높은 수준의 사회복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미국보다 취업률이 훨씬 높다.
유럽이 현재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것은 복지국가에 원인이 있다기보다 유럽중앙은행의 탓이 크다. 미국에선 경제학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스펙트럼과 관계없이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RB)가 금리 수준 결정을 통해 성장·고용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이는 연준이 어떤 정책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견해 차이와는 별개다. 반면 놀랍게도 유럽에선 그 누구도 유럽중앙은행이 금리 수준 결정을 통해 성장과 고용을 지속시킬 수 있다고 인식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01년 주식시장 붕괴 이후 미국 경제가 불황에 빠지자 연준은 기준금리를 6.5%에서 1%로 급격히 내렸다. 반면 유럽중앙은행은 아주 점진적인 금리 인하에 나섰다. 유로지역이 미국보다 인플레이션율이 낮은데도, 유럽중앙은행은 금리가 2% 밑으로 떨어지는 걸 결코 허용하지 않았다. 대신 유럽중앙은행은 “성장을 지속하려면 사회복지 제도를 축소해야 한다”고 유럽 시민들에게 끊임없이 설교하고 있다. 헌법 부결을 통해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유권자들이 거부한 것이 바로 이 과정이다. 두 나라 유권자들이 이 모든 관련 쟁점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60년에 걸쳐 자리잡아 온 복지국가의 보호 장치들을 침해하는 데 유럽연합의 제도들이 이용되고 있음을 알고 있으며 이런 인식을 헌법 부결로 표명할 만큼은 충분히 영민했다.
유럽의 재계와 고소득 전문가 계층은 미국의 비슷한 계층에 필적하는 생활수준을 누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는 서유럽 인구 대부분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다. 엘리트들은 자신들이 부유해지는 것이 세계화의 불가피한 결과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세계화가 소득의 역진적 재분배를 불가피하게 한다는 논리는 절대 어디에도 없다. 문제는 현재 엘리트들이 권력의 지렛대를 통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중앙은행과 공적 논쟁을 틀짓는 미디어가 그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은 당분간 난국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딘 베이커/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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