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30 19:43
수정 : 2005.06.30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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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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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 미국에서는 사회당, 민중당 등 진보정당이 많이 등장했다. 당시 미국의 자본주의 발전이 급속했던 만큼 그 폐해도 컸기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인들인 록펠러, 모건, 스탠퍼드 등은 워낙 나쁜 짓을 많이 하여 이른바 “강도 나으리들”로 불리었으니 그 상황을 알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진보정당들도 중국인, 일본인 등 “바람직하지 못한” 인종의 이민을 금지하는 법의 제정에는 적극 찬성하였다. 한 유명한 여권운동가는 이에 반대해 중국인의 이민을 자유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것도 알고 보면 중국인들이 가사노동을 떠맡아 (중산층) 여성들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논리에서였다고 한다. ‘진보’라는 것을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규정한다면, 진보성과는 거리가 먼 태도들이었다. 이른바 진보세력마저도 당시 미국 사회를 지배했던 인종주의라는 ‘시대적인 편견’을 극복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1990년대 후반 이후 진보세력이 급성장하여 사회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들도 그 내용은 다르지만 한 세기 전 미국의 진보세력과 마찬가지로 시대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60년대 이후 최근까지 우리나라는 국가 주도, 재벌 중심의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따라서 기존 질서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고자 하는 ‘진보적’인 사람들이 국가와 재벌의 힘을 약화시키고 싶어 했던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이 이를 위한 해결책으로 시장이라는 것을 채택했다는 점이다.
그 논리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시장의 힘이 확대되면 국가의 자의적 개입 여지가 줄어들고, 따라서 부정부패도 줄어든다. 또 시장이 강해지면 재벌들의 힘이 약화된다. 정부와 재벌의 힘이 약화되면 정치적, 경제적 자유가 확대된다. 이러한 논리 위에서 중앙은행 독립을 포함한 ‘관치금융’의 청산, 시장 개방(특히 자본시장), 공정거래법의 강화,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화 등을 통해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외환 위기 이후 우리 경제의 ‘진보적’ 개혁의 주요 목표가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진보적 개혁이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빈곤층이 늘어나고 고용불안이 증대되어 진보주의자들이 위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은 상대적으로 더 어려워졌다. 왜 이런 역설적인 결과가 벌어졌을까?
이는 사실 시장의 본질을 이해하면 별로 역설적인 결과가 아니다. 아무리 ‘투명하고 공정’하더라도 시장질서는 자산을 많이 가진 사람들, 특히 유동성이 높은 금융자산을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 유리한 체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경제에서 불평등을 줄이려면 자본시장이나 노동시장 자체를 규제하여 불평등의 원인을 줄이든지, 아니면 복지제도를 통해 소득을 재분배하고 기회의 균등을 확대함으로써 결과의 불평등을 완화하는 수밖에 없다.
과거 우리나라는 정부가 시장을 규제하여 불평등을 줄이는 체제였는데, 외환 위기 이후 과거 체제를 청산한다고 시장규제는 철폐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만큼 복지제도를 확대하지 않았으니 사회가 ‘양극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과거 발전 모델에 대한 ‘시대적 편견’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는 보수적인 사람들이 주장하는 시장주의가 우리나라에서는 ‘진보적인’ 노선이 되어버린 것은 우리의 역사적 불행이다. 우리나라가 진정으로 진보하려면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하루라도 빨리 시장주의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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