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30 20:02
수정 : 2005.06.30 20:02
난 여름철 별미이며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보리밥을 싫어한다.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눈으로 보기를 꺼린다. 예전에 무등산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에 아내가 보리밥을 먹고 가자고 졸랐으나 난 사 주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당뇨병 환자가 된다 하더라도 보리밥은 먹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보리밥을 싫어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초등학교부터 고교 시절까지 내가 보낸 곳은 남도에서 쌀보리가 유난히 많이 나는 새재이다. 해마다 오뉴월이면 논에 누렇게 익은 보리를 보며 어떤 이는 즐거워했을지 모르지만 나만은 ‘언제 저 보리를 다 베어 탈곡하고 또 건조하여 수매까지 하지’ 하는 끔찍한 생각을 먼저 해야만 했던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가난한 농부였다. 그래서 대부분 남의 논을 빌려 이모작 농사를 지었다. 그 중 보리농사는 논 주인에게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아버지는 보리농사에 매우 집착을 하셨다. 보리를 수확하여 햇볕에 말리고 그것을 다시 바람을 이용하여 정제한 뒤 일정량을 포대에 담아 농협수매를 하면 끝나는 것이다. 우리 가족들은 모두 오월의 햇볕 아래 보리 베기부터 칠월의 수매까지 이런 작업을 계속해야만 했다. 이렇게 수매한 돈으로 아버지는 농협에 빚도 갚고, 벼농사 지을 비료와 농약도 사고, 나의 학교 수업료도 내주셨다. 난 어린 나이에 ‘가난한 농부이며 오직 배운 것이 농사일밖에 없기 때문에 열심히 농사를 지으며 살겠다'고 다짐하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이런 농사일 그만두고 도시에 나가 장사를 하든지 아니면 건설 노동일을 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고 자주 투정을 부리곤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변함없이 보리농사를 계속 지으셨다.
그러던 어느 겨울에 아버지는 그렇게 열심히 하시던 보리농사 일을 어머니에게 모두 남기시고 나의 곁에서 떠나가셨다. 그리고 어머니는 홀로 몇 년간 더 보리농사를 짓다가 힘이 부쳐 그만두셨다. 아마도 지금 나의 고향 곳곳에서 보리가 햇볕에 잘 마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나의 아버지와 같이 보리농사에서 희망을 꿈꾸는 가난한 늙은 농부를 만날 수 있을까?
신달수/충북 충주시 용산동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