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7.03 16:49
수정 : 2005.07.03 16:49
국방장관 해임안과 이른바 ‘홍준표법’이라고 불리는 재외동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됐다. 시끌시끌 소동이 벌어지고 여론광장에 난리가 났다. 홍준표법 사수를 위해 촛불시위를 벌이자는 움직임조차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당신의 입장은 뭡니까?’라고 묻는다 치자. 그렇다면 나는 냉랭하게 쏘아붙이듯 답하겠다. ‘그거 정치인들이 알아서 하라고 해!’ 대의정치라는 게 뭔가. 아이들 꼬리잡기 놀이처럼 얽히고설킨 현실의 고리를 전문적으로 교통정리하라고 국회의원 뽑아놓은 것 아닌가. 국민 노릇 제대로 하고자 그 숱한 법안들 하나하나를 검토하고 분석하고 찬반 입장을 가져야 한다면 어디 피곤하고 힘들어서 살겠는가.
하지만 이번 사안에는 좀 다른 이유로 관심을 갖게 된다. 안건의 성격이 소위 국민정서법이자 괘씸한 자 응징법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정서’와 ‘응징’의 집단주의적 성격이 두렵다. 그것은 정의와 불의의 대결로 둔갑하여 지지율을 춤추게 만들고 그에 따라 평소 합리적이었던 정치인의 이성을 잃게 만든다. 오죽하면 안건내용에 대한 토론보다는 안건 발의의 동기, 찬반의 득실계산 같은 여야 간 세대결 차원에서만 문제가 다뤄지고 있겠는가.
먼저 군대내 총기난사 사건을 두고 ‘국민정서’ 차원에서 ‘일벌백계’하기 위해 ‘도의적 책임’을 물어 국방장관을 해직시키자는 안건을 보자. 군 미필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정당에서 발의했다는 사실도 흥미롭지만, 나는 장차 한나라당이 집권할 의향이 있는지부터 묻고 싶다. 교통사고가 나면 교통부 장관을, 교육비리가 터지면 교육부 장관을, 환경재해가 생기면 환경부 장관을 교체하면 된다는 발상인데 그렇다면 책임과 대책은 누가 떠맡는단 말인가. 여론 즉 국민정서가 좋지 않으니 표적을 없애서 대통령을 도와주자는 발상일까. 만일 집권한다면 부메랑이 되서 돌아올 끝없는 장관 해임안을 어떻게 헤쳐갈 심산인지 모르겠다.
‘홍준표법’의 경우는 더욱더 심각하다. 법안 부결 후 라디오에 출연한 발의자가 침통해 하기는커녕 너무도 유쾌한 목소리로 계속 너털웃음을 짓는 바람에 듣기가 참 민망했다. ‘어쨌든 떴다’라고 환호하는 심리로 추측하는 건 내 좁아터진 심성이라 치자. 하지만 그 법안이 뜻하는 괘씸한 한국인, 법안대로라면 병역면탈을 목적으로 국적을 포기한 자들을 ‘찍어내서’ 재외한국인 지위를 박탈하고 외국인 취급을 하자는 ‘정의로운 응징’이 과연 미래한국을 내다본 지도층의 시각인지 묻고 싶다. 사실 그 법안의 취지는 가수 유승준 사건 이후 개정된 조례로 이미 실질적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상태였다. 다만 엄격한 법률규정을 두지 않은 까닭은 이중국적자 내지 재외동포들이 처한 다양한 입장차 때문이었다. 병역기피를 목적으로 국적을 넘나드는 자들도 분명히 있지만 생존의 여건이 국외로 펼쳐져 있는 한국계가 무려 6백만명을 넘어서고 있는 상태이다. 선진 10개국(G10) 진입을 목표로 한다는 나라에서 순종만 남겨놓고 가지치기를 하려는 발상의 애국애족은 자해행위에 가깝다. 국내거주 재외한국인을 모두 잠재적 병역기피자로 몬다면 홍 의원은 국회의원 모두를 잠재적 범법자로 보는 시선에도 동의하겠는가.
괘씸한 행위를 할 가능성이 있는 2천명 가량을 응징할 법안을 만드는 시간에 우리의 병역제도와 군사문화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고의성이 없는 게 판명되거나 직접적 당사자가 아닌 사건사고에 대해서 소위 도의적인 책임을 묻는 봉건왕조식 유습도 시급히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국민정서라는 이름의 집단의식은 종종 그 반대의 길을 걷는다. 그것과 싸우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김갑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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