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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05 19:04 수정 : 2005.07.05 19:04

가끔 아파트 맞은편 집 문앞에 놓인 두툼한 신문에 눈길이 갈 때면 내 손에 들린 <한겨레>의 가벼움에 마음이 흔들린다. 같은 값인데, 사무실에 가면 <한겨레>가 있는데, 인터넷으로 봐도 되는데 하는 생각이 나를 유혹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한겨레> 독자다.

지금 한겨레는 어렵다. 내부 구성원들에게 현실적으로 체감되는 것은 경영의 어려움이겠지만 좀더 본질적인 것은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유일한 언론으로서의 특권(?)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송이 이제는 말할 수 있다고 하는 순간부터, 탄생 과정은 전혀 다르지만 또다른 독립 언론이 등장하고, 인터넷 언론이 시민기자 시대를 열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 한겨레는 더 유일한 존재가 아니다. 이 정도야 한겨레가 원했던 민주화의 결과이지만 과거 군사정권과 야합했던 언론이 이제 비판언론을 자임하며 한겨레를 권력의 나팔수라 비판하는 지경이다.

이분법적 정치구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민주-반민주’ 구도가 사라진 뒤 상황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개혁을 표방한 정권들의 능력과 의지 부족, 도덕성 상실은 이런 혼란을 더욱 가중시킨다. 5·18과 6월 항쟁이 단지 역사일 뿐인 세대는 물론이고 6월 항쟁 세대에게까지 이제 과거는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정치적 민주화가 사회경제적 개혁으로 진보로 전진해야 하는데도 민주화 운동 속에 내재되었던 진보의 가치와 이념은 아직 현실에서 구체화되고 있지 못하다. 오늘 한겨레의 현실과 고민은 민주화의 희망처럼 진보의 희망을 국민 속에서 일궈내지 못하고 있는 ‘운동’의 그것과 맞닿아 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박봉을 감수하며, 동고동락해온 동료들을 내보내면서, 한겨레 구성원들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크고 작은 유혹을 이겨내며 운동을 해 온 처지에서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면서도 쉽게 가는 길을 택하지 않고 다시 제2 창간 운동을 시작하는 이들, 그래서 나는 한겨레가 민주화의 동반자이자 추동력이었던 것처럼 21세기 진보의 역사에서도 같은 소임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니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민주화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시대 진보의 희망도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기식·참여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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