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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06 19:54 수정 : 2005.07.06 19:54

조홍섭 편집국 부국장

타이 사람과 캄보디아 사람이 침을 튀겨가며 제 나라 자랑에 여념이 없다. 캄보디아 사람이 말했다. “타이 마사지와 킥복싱, 타이댄스는 앙코르와트 사원의 부조에 다 나와 있다. 그러니까 캄보디아가 원조다!” 그러자 타이 사람이 대꾸했다. “거 봐라. 앙코르와트도 타이 문명이란 증거다!” 이 농담은 사실 가볍지 않다. 두 나라는 이 문제로 멱살잡이를 넘어 전쟁 직전까지 갔다.

지난 2003년 프놈펜 주재 타이 대사관과 기업 건물들을 성난 캄보디아 사람들이 불태우고 짓밟았다. 타이 국왕이 기민하게 말리지 않았다면 전폭기 네 대가 프놈펜에 보복폭격을 했을 것이다. 한 타이 여배우가 프놈펜의 라디오 방송에서 “앙코르와트는 우리 것”이라고 말한 것이 폭동의 원인이라는 보도를 읽고 갸우뚱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그쪽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야 타이·캄보디아·미얀마(버마) 사이의 역사분쟁이 한-중-일 사이 못지않게 오래고 골치아픈 문제임을 알 수 있었다.

아시아 열두 나라에서 온 언론인·학자·시민운동가들이 지난달 말 일본 후쿠오카와 부산에서 모였다. 이 모임은 아시아 리더십 펠로 프로그램(ALFP)을 통해 9년째 얼굴을 익히고 토론을 해 온 이른바 ‘공적 지식인’의 아시아 네트워크다. 이번 총회의 주제는 “아시아 공동체, 관념인가 현실인가?”였다. 동아시아 문제를 이해하는 것만도 힘에 부치는 터여서 감당 못할 주제였지만, 적어도 아시아 나라들치고 이웃나라와 오랜 갈등의 역사가 없는 나라는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참가자들이 4박5일 동안 머리를 싸맨 화두는 ‘기억’이었다. 식민지배와 종족, 나라 사이 갈등, 그리고 계층 갈등은 고비마다 아픈 기억으로 되살아난다. 이런 역사적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잊혀지는가, 또 어떻게 악용되는가?

최근 불거진 동아시아의 역사분쟁은 모두의 관심사였다. 한국 중국과 일본 사이의 완고하고 종종 감성적이기까지 한 반목은 왜 불거지는가. 이 지역에서의 일본 식민지배가 유독 길고 강해서일까. 250년 동안 네덜란드의 식민지배 뒤 3년 반 동안 일본의 지배를 받은 인도네시아 쪽 참가자는 “그 3년 반이 더 길었다”고 말했다. 일본 릿쿄대 이종원 교수는 문명을 전파해 준 나라를 침략한 데 대한 배신감과 마지못한 사과, 그리고 불안정한 미래에서 이유를 찾았다. 간 히데키 일본 세이난 조가쿠인 대학 교수는 역사문제의 난제를 푸는 열쇠로 민주화와 인권존중을 들면서, 일본보다 앞선 한국의 시민사회가 국내의 과거사 청산뿐 아니라 일본과의 화해와 상호이해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의 어원은 ‘동쪽에 있는 땅’이다. 유럽이 자신의 정체성을 정하고 난 바깥, 그러니까 식민지화의 유산인 셈이다. 그래서 ‘아시아’란 말은 늘 무언가 부족하고 부정적인 것을 가리켰다. 참가자들은 새로운 아시아의 정체성을 다양하고 다원적인 가치와 점증하는 시민연대를 토대로 구축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속좁은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서로 공통점과 평화·교류·시민사회를 키워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서만 아픈 역사적 기억은 화해와 용서에 자리를 내줄 것이다.

그런 실천의 한 사례로 최근 한·중·일 시민단체가 낸 공동교과서 〈미래를 여는 역사〉는 참가자들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아시아 공동의 역사교과서를 만들자는 제안까지 나왔다. 타이와 캄보디아도 분쟁 해결 방안으로 왜곡된 역사교과서를 고치자는 데 2년 전 합의했다.

조홍섭 편집국 부국장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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