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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06 20:02 수정 : 2005.07.06 20:02

박종현/ 국회도서관 금융담당 연구관

최근 우리 사회는 집값폭등과 부동산거품이라는 ‘공공의 적’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특정 지역의 수급 불일치를 반영한 국지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이 부동산 불패의 신화와 결합되면서 국가적 의제로까지 떠오른 것이다. 이 와중에 여러 다양한 해결방안들이 나오고 있는데,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잘못된 처방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금리인상’론이다. 적지 않은 경제학자들은 저금리가 부동산거품을 가져온 주범이라며 거품이 더 커지기 전에 금리를 인상해 부동산시장으로 몰리는 부동자금을 흡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소비와 투자가 부진한 것은 금리 때문이 아니므로 금리를 올려 부동산투기라도 막자는 것이다.

금리인상론은 그럴 듯해 보인다. 외환위기 이후 일반화된 저금리기조가 부동산투기의 온상으로 작용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금리인상이 투기세력의 ‘실탄’을 줄이는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금리와 집값 사이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지난 2000년초 <이상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라는 책을 통해 미 주가거품의 붕괴를 정확히 예언했던 로버트 실러 교수에 의하면, 저금리는 자산가격 급등의 원인이 아니라 환경에 지나지 않는다. 즉, 저금리에도 집값은 올라가지 않을 수 있으며, 금리를 올리더라도 집값이 반드시 잡히는 것 또한 아니다. 실제로 부동산거품에 대한 우려 속에서 2002년 5월 금리인상이 단행되었지만, 집값상승 기조는 꺾이지 않았다.

케인즈와 실러는 ‘추가적인 가격상승에 대한 기대심리’가 부동산거품의 진정한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집값 급등의 핵심은 저금리가 아니라 투기세력의 집요한 ‘작업’에 의해 평범한 보통사람들까지 집값상승의 기대심리에 휩쓸리는 사회적·심리적 메커니즘이라는 것이다. 탐욕과 공포를 자양분으로 삼는, 투기라는 ‘악의 꽃’은 뿌리가 깊어지면 금리로는 잡기 어렵다. 금리인상은 추가적인 가격상승에 대한 기대심리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며, 오히려 가격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신호로 해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금리가 오르면 ‘내집 마련의 꿈’을 어렵게 이룬 서민층이나 담보대출로 생계와 사업을 근근히 꾸려가는 소시민이나 자영업자의 처지만 악화시킬 가능성도 높다. 이젠 집값 상승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확실한 신호를 통해 사람들의 기대심리를 잠재우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투기대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끝없이 오를 것만 같던 집값 폭등세를 금리인상 없이 한순간에 제압했던 2003년 ‘10.29 대책’은 적지 않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높게 평가될 필요가 있다.

물론 가격상승의 기대심리를 확실히 잠재우기 위해 큰 폭으로 금리를 인상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큰 폭의 금리인상은 핵폭탄과 유사한 효과를 발휘함으로써 더 큰 파국을 초래하기가 쉽다. 자본주의 역사상 최악의 자산가격거품 붕괴로 1929년 미국의 대공황과 1989년 일본의 장기불황이 지적되는데, 이들은 금리인상을 통해 거품을 미리 터뜨리려던 중앙은행의 정책실패에서 비롯되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반면, 1990년대 미 연준의 그린스펀 의장은 주가거품이 터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금리를 인하하는 다른 길을 선택함으로써, 급격한 경기후퇴 없이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 경제는 실물경제에 대한 지나친 비관심리와 부동산에 대한 비이성적인 과대평가라는 ‘마음의 병’에 걸려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화당국에 의해 금리가 인상된다면 이 병은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이들 ‘마음의 병’을 직접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정교하고도 실현가능한 미시적 정공법을 찾아내고 이를 묵묵히 실천하는 일이다.

박종현/ 국회도서관 금융담당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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