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7.06 20:06
수정 : 2005.07.06 20:06
이집트를 이미 24년이나 다스려온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또다시 대선에 나서려는 데 반대하는 시위가 올 들어 이집트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이러한 반정부 움직임의 한가운데에 무슬림형제단이 있다.
무슬림형제단은 이집트 이슬람운동의 77년 역사와 아랍권 전체의 이슬람운동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전세계에 퍼져 있는 가장 급진적인 이슬람 무장세력인 알카에다 역시 한때는 무슬림형제단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 하마스는 스스로를 무슬림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로 여기고 있다.
종교·정치·사회운동 단체인 무슬림형제단은 1929년 공립학교 교사였던 하산 알바나(1906~49)가 이집트의 이스마일리야에서 세운 조직이다. 46년 무렵엔 고등학생과 상공인, 젊은 군인 등 이집트 대부분의 사회집단 속으로 파고 들어 조직원 수가 100만명에 달했다.
30~40년대에 무슬림형제단이 주요한 정치조직으로 성공하게 된 것은 국민들의 종교적 감정을 진지하고 정교한 계획으로 바꾸어낸 조직능력 덕분이었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좌절하고 있던 이집트인들은 처음으로 때로는 과격하지만 조직화된 정치적 표현 기회를 얻었다. 게다가 형제단은 신자들의 사회·경제적 복지를 위해 협동조합이나 섬유공장, 병원 등 다양한 기관을 설립했다.
무슬림형제단은 줄곧 국가의 공격 표적이 돼 왔다. 이집트 정부는 형제단이 48년 누크라시 총리 암살, 54년 가말 압드 나세르 대통령 암살 시도, 66년 나세르 정권 전복 시도 등 비밀 군사활동을 벌였다며 비난했다. 이때마다 조직의 지도자는 사형을 당하고 조직원들은 투옥됐다. 형제단에서 떨어져나간 알지하드와 이슬람그룹 등은 81년 사다트 대통령을 암살했고, 80~90년대에는 무바라크 정권에 대항하는 유혈 공격을 주도했다.
피로 물든, 또 다사다난했던 역사를 겪고도 무슬림형제단은 살아남았고 결집력 강한 조직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의 무바라크 정권은 무슬림형제단을 합법적인 정치조직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이들은 종교적 담론을 이용해 여론을 움직이고 민주적 선거를 거쳐 변호사협회 등 직업 조직들을 장악하고 있다. 무슬림형제단이 불법화된 2000년 총선에선 조직원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해 17석을 차지했다.
한편, 이집트 정부는 67년부터 계속되온 비상계엄법, 90년대에 공포된 반테러법과 언론법 등을 이용해 무슬림형제단 조직원 등 반체제 인사들을 투옥하고 시민사회를 억압하고 있다. 이런 조처들은 지난 24년 동안 ‘실용성’이라는 명분 아래 1당 통치, 곧 무바라크의 집권당만을 인정하도록 강요해 왔다.
무슬림형제단은 ‘이슬람법(샤리아)에 근거한 사회’를 주요 이데올로기로 삼고 있지만, 지난 수십년 동안 다원주의를 정치적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민족주의, 마르크스주의 등 다른 세속적인 정치세력 등과 조화를 추구하는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적극적인 구실을 맡고자 해왔다.
무바라크 정권은 형제단을 합법화함으로써 그 안에 존재하는 평화로운 변화의 흐름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이집트 정부가 40년대부터 60년대까지 줄곧 형제단을 억압함으로써 얻은 것은 이들의 지하 비밀활동과 더 큰 유혈사태였다. 이슬람 정치조직 안에 나타나고 있는 이런 평화적인 추세를 무시하고 억압을 강화한다면 무슬림형제단은 다시 지하로 내려가서 피로 물든 이집트 현대사를 재현하게 될 것이다.
아드난 무살람/팔레스타인 베들레헴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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