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7.10 20:11
수정 : 2005.07.13 04:08
“권력 이동”이라는 말이 사방에서 들린다. 정계나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언론계 법조계 교육계 할 것 없이 사회 전반이 이미 특정 기업의 영향력에 장악되고 말았다는 말이 공공연한 사실처럼 여겨지고 있고, 아예 나라 전체가 그 기업의 “공화국”을 넘어 “제국”으로 되어가고 있다고도 한다.
헌법이라는 말은 원래 ‘나라가 구성되는 방식’을 의미하는 것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는 ‘사회적 권력이 구성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권력을 행사하는 국가의 각종 기관은 어떻게 구성되며 그 책임자들은 어떻게 선출할 것인가. 또 이들은 각각 어떠한 권능과 임무를 부여받아 어떻게 사회 전체를 다스리고 구성해나갈 것인가.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일체의 문제점들은 누가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등의 문제들을 조심스럽고 세밀하게 규정하는 것이 헌법이기 때문이다. 옛날 그리스 인들은 이렇게 조심스럽게 마련된 헌법이 없는 사회에서는 개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보장되는 삶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헌법에 따라 다스려지는 사회와, 헌법이 무시되고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자의에 따라 사회적 권력이 행사되는 사회 두 가지로 구별하여 후자를 ‘참주정’이라고 이름 붙여 인간이 살 수 없는 몹쓸 사회라고 보았다.
시장이나 기업은 사회적 권력을 책임지도록 마련된 제도가 아니다. 그것들은 이윤 극대화라는 자기 스스로의 합리성만을 작동 원리로 삼는 ‘경제적 장치’일 뿐이다. 만약 정말로 사회적 권력의 대부분이 이것들에게 집중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소수 집단의 경제적 합리성 이외에 나라와 인간의 삶에서 고려되어야 할 일체의 것들은 무시되는 글자 그대로의 참주정이 도래하게 될 것이다. 경제 생활이 어려워지고 기존의 정치질서가 혼란해지게 되면 곤경에 처한 사람들은 점점 큰 땅을 가진 부호들에게 굽신거리고 앞다투어 그 하인 행세를 하게 된다. 이 부호들은 결국 참주가 되어 자신 및 주변의 소수 집단의 권력과 부를 더욱 늘리는 데에 나라 전체를 이용한다. 부와 권력의 불평등은 격화되고 마침내 사회는 폭발 직전이 된다. 이런 것이 고대 그리스에서의 참주정 발생의 고전적인 스토리였다.
현재 펼쳐지고 있는 “권력이동”이 21세기 자본주의에 고유한 신경향인지 아니면 몇 천년 묵은 인간사의 재판인지는 필자도 궁금하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에 횡행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이야말로 21세기 사회가 나아갈 바라는 사고방식이다. 게다가 이러한 사고방식은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거리낌 없이 특정 대기업 경제연구소를 드나들며 국민경제의 정책안과 그 방향을 ‘지도’ 받는다고 한다. 아예 대통령부터 재계 인사들 앞에서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다.
위정자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그 “권력이동”을 수수방관하거나 중계방송이나 하라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단순히 헌법에 명시된 형식적 임무를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국민들이 그들을 선출하여 무소불위의 국가 권력을 넘겨준 뜻은, 사회적 권력은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쓰이고 배분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 사회가 멀게는 4·19부터 가깝게는 87년 6월 항쟁으로부터 지금까지 엮어온 민주주의의 전통 속에서 사람들 사이에 명시적으로 또 암묵적으로 합의된 정신을 틀어쥐고 발전시키라는 것에 있다. 그러한 원칙에 서서 현재의 상황을 바람직한 방향을 향해 이끄는 역할을 방기한 채 그저 그 “권력이동”을 계속 뒤따라가는 행태를 계속한다면, 이는 스스로의 존재 이유 자체를 소멸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홍기빈/캐나다 요크대 박사과정·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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