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7.11 21:44
수정 : 2005.07.13 04:00
9·11 악몽이 아직도 생생한데, 런던 테러 참사 소식을 접했다. 그 선량한 시민들은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갔다. 그들은 그저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나가던 아름다운 우리의 이웃들이었다. 몸과 마음이 상처받은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을 헤아려 본다. 하늘을 우러러 통곡할 가족들의 절규를 생각해 본다. 내가 만일 그들이었다면,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일이다.
세계는 경악하고 테러가 가져다 준 반인륜적 반문명적 범죄에 긴장하고 분노를 터뜨린다. 언론들은 앞 다투어 비장한 각오로 “테러와의 전쟁”을 굳게 다짐하는 서방 지도자들의 발언과 의지를 전달한다. 나라마다 테러 경보를 발령하고 검색과 검문을 강화하면서 테러리스트들을 끝까지 추적해서 그 뿌리를 뽑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한 가지 지울 수 없는 의문은 “테러와의 전쟁”으로 지구촌은 더 많은 테러를 경험하고 더 큰 테러위협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테러만 났다 하면 으레 등장하는 알 카에다라는 테러조직의 실체도 오리무중이다. 어떻게 테러를 뿌리뽑겠다는 것인지, 이제는 아무도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 것 같다.
따라서 지금은 우리가 서구가 애써 외면하는 근원적이고 확실한 테러근절책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야 될 때다. 첫째는 아무 조건없이 즉각적으로 이라크에서 미군이 철수하고 부당한 이라크 침략전쟁을 종식시키는 일이다. 둘째는 국제법과 유엔 안보리 결의안, 유네스코 헌장 등 인류가 마련한 최소한의 약속의 틀에서 미국이 공정한 중재자로서 팔레스타인 분쟁을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이 문제가 해결된다면 이슬람권에서 야기된 테러의 80%는 저절로 소멸될 것이란 것이 내 생각이다.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이슬람권의 분노와 복수의 응어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반대한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무고한 이라크 시민 10만 이상이 희생당했다. 2천년간 살아온 땅을 이스라엘에게 빼앗긴 수만 명의 무고한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과 야만적인 주거지 파괴로 귀한 생명을 잃었다. 그들의 절박한 생존 투쟁이 저항조직을 만들고 알 카에다라는 극렬 테러조직을 살찌운 근본적인 원인이다. 잔혹하게 희생당한 가족과 동족들의 원한을 갚기 위해 수천 명의 자살특공대들이 죽음을 손꼽아 기다리게 하는 상황을 바꾸어 주지 않는 한 어떠한 첨단무기와 어떤 대테러대책으로도 그들을 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족과 선량한 시민들이 학살당한데 대한 보복으로 미국과 그 동조국가의 또 다른 선량한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테러를 가한다. 더 큰 문제는 희생자들에 대한 죄의식보다는 통쾌한 복수라는 정의감으로 무장되어 있는 테러 조직의 성격과 섬뜩한 자기합리화이다.
모든 생명은 고귀하다. 누구든지 다른 사람의 생명보다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가족, 자신의 동족들의 생명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긴다. 테러로 숨진 뉴욕과 런던시민들의 고귀한 생명을 안타까워하고 전 국민이 전 매체를 통해 위로를 보내고 테러와의 전의를 불사를 때, 레바논에서,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체첸에서, 이라크에서 거의 매일처럼 죽어나가는 고귀한 생명들에 대해 왜 서구는 애써 침묵하고, 그들의 존귀한 생명에 대해 방관하는가?
진정으로 테러를 줄이고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당한 목적을 상실하고 무차별적인 인명살상을 일삼는 테러조직을 와해시키고, 그들을 응징하는 국제적 공조를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동시에 테러를 배태시키는 근본적인 원인 제거에도 진지한 국제적 협력이 있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잘못된 서구의 침략과 전쟁선동주의, 그로 인한 무고한 생명의 희생에도 날카로운 비판의 날을 세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은 서구의 부당한 침략이라는 극한적 상황에서도 이슬람권의 압도적 절대다수 대중들은 테러분자들을 용서하지도, 그들에게 협력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희수/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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