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7.12 18:37
수정 : 2005.07.13 02:07
외환위기 이후 빠르게 진행되어 온 노동시장 양극화는 우리 사회에 계층간 임금격차 확대와 소득 불평등 심화를 가져왔다. 그 결과 한국의 분배 상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사회보장제도의 확충은 이런 면에서 매우 절실하다. 하지만 임금생활자의 사회보험 적용 비율은 평균적으로 60%를 넘지 못하며, 국민기초생활 보장제도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절대빈곤층도 전체 절대빈곤층의 절반 가까이 된다. 물론 사회보장 사각지대 문제의 원인은 다양하고, 정부의 노력을 통해 일부는 완화될 수 있다. 그러나 임시일용직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가 노동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는 점은 이 문제의 해소를 가로막는 큰 걸림돌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고용이 빈곤과 불평등 완화의 필요조건이며, 사회보장제도 발전의 전제조건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그렇다면 고용에 초점을 두는 정책은 어떻게 마련될 수 있을까? 다른 나라들의 경험을 빌려 거칠게 말한다면 두 가지의 방안이 있다. 그 중 하나의 방안은 공공 부문의 예산 확대를 통해 사회복지와 공공행정, 보건의료, 교육과 같은 사회 서비스 부문의 발전을 꾀하는 것이다. 한국의 산업구조에서 사회 서비스 부문의 비중이 매우 낮아 독일의 45%, 미국의 40%, 스웨덴의 34% 수준이라는 점, 급격한 노령화에 따라 사회 서비스 욕구가 증대하고 있다는 점, 가족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여성의 노동 시장 참여 확대가 필요하다는 점은 이 방안이 현재 한국에서 적절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다른 방안은 노동시장을 더욱 유연화함으로써 시장에서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가 창출되도록 하는 것이다. 탈산업화의 제약을 감안하면 일자리는 주로 비제조업 분야에서 만들어질 것이며, 이렇게 만들어진 일자리는 비제조업의 상대적으로 낮은 생산성 때문에 대체로 저임금 일자리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러한 전략은 기업의 노동비용을 낮춰주고, 사람들을 저임금 일자리로 유인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소득보장 프로그램을 핵심적인 구성요소로 포함한다. 일하지만 가난한 계층, 이른바 ‘근로빈곤층’을 표적 집단으로 하는 근로소득보전세제(EITC)는 바로 이러한 전략과 관련된다.
정부는 지난해 12월에 대통령 보고서를 통해 사회 서비스 부문에서의 일자리 창출이 노동시장의 양극화 문제를 돌파하고 경제의 재도약을 꾀할 수 있는 핵심고리라고 밝히면서, 공공부문 예산 확대를 포함한 몇 가지의 구체적인 전략을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7일에 다시 정부가 밝힌 하반기 경제운용방향은 근로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근로소득보전세제의 도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로 떼어놓고 바라보면, 정부의 문제 진단과 방안 선택은 상당히 적절해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두 개의 정책 방안은 상이한 이념적 배경에 근거하며, 정책의 집행 및 효과라는 측면에서도 상충하기 때문이다. 앞의 방안은 고용증대와 소득평등을, 뒤의 방안은 고용증대와 건전재정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동시에 같이 추진되기는 어렵다. 세계화와 탈산업화의 압력에 직면해 있는 오늘날 건전재정, 소득평등, 그리고 고용증대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없음을 빗대 외국의 한 학자는 트릴레마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도 있다. 경험적으로도 이 두 가지 정책을 같이 추진한 나라는 아직까지 없다.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면, 두 개의 패를 다 들고 가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정책의 일관성은 능력 있는 정부의 징표이기 때문이다.
홍경준/성균관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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