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7.13 20:42
수정 : 2005.07.13 20:43
유레카
“때마침 점심밥이 반갑고 신기하다. 정자나무 그늘 아래 앉을자리 정한 뒤에, 점심 그릇 열어놓고 보리 단술 먼저 먹세. 반찬이야 있고 없고 … 맑은 바람 배부르니 낮잠이 맛있구나. 농부야 근심마라. 수고하는 값이 있네. 조 이삭 푸른 콩이 어느 사이 익었구나 … 해진 뒤 돌아올 때 노래 끝에 웃음이라. 자욱한 저녁 내는 산촌에 잠겨 있고, 달빛은 아스라이 발길을 비추누나 …”
음력 유월은 농사일이 연중 가장 고될 때다. 그래도 농가월령가 6월령에는 농촌의 아름다움이 넉넉하게 배어 있다. 도시 사람들이 꿈꾸는 전원의 삶이 바로 이런 모습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의 농부들에게 ‘농촌의 아름다움’이란 그저 한가한 옛이야기일 뿐이다.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 경기도 의왕 농업기반공사 농어촌교육원에서는 장·차관을 비롯한 농림부 간부들과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주요 농민단체 대표들의 마라톤 워크숍이 열린다. 지난달 임시국회에서 쌀 협상에 대한 비준을 받지 못한 농림부가 농민들을 설득하고자 마련한 자리다. 10년에 걸쳐 119조원을 투·융자에 쓴다지만, 농민들의 불안을 달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농가월령가를 지은 다산 정약용의 둘째아들 정학유(1786~1855)는 맺는 노래에서 이렇게 읊었다.
“어와 내말 듣소 농업이 어떠한고. 종년 고생한다 하나 그 중에 낙이 있네. 위로는 나라에 봉사하고 사사로이는 조상 제사 부모 봉양 형제 처자 혼상 대사, 먹고 입고 쓰는 것이, 토지 소출 아니라면 돈 마련을 어이할꼬. 예부터 이른 말이 농업이 근본이라. 배 부려 선업하고 말 부려 장사하기, 전당잡고 빚주기와 장판에 일수놀이, 술장사 떡장사며 술막집 가게 보기, 아직은 흔전하나 한번을 뒤뚝하면, 파락호 빚꾸러기 살던 곳 터도 없다 …”
농업을 천대하고 돈벌이 장사에 골몰하는 오늘날의 세태를 미리 경계한 것은 혹시 아니었을까.
지영선 논설위원
ys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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