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7.14 18:47
수정 : 2005.07.14 22:32
아침햇발
1년 이상 열리지 못했던 6자 회담이 이번 달 마지막 주 베이징에서 열릴 예정이다.
네 번째를 맞는 이번 6자 회담이 성사된 과정을 돌아보면 미세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점이 발견된다. 우선 6자 회담 재개의 돌파구가 남북 접촉에서 열렸다는 점이다. 지난달 17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6·15 남북 정상회담 다섯 돌을 맞아 평양을 방문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게 미국이 북한을 존중하면 7월께 6자 회담에 복귀할 의사를 밝혔다. 이후 북한 <중앙통신>은 10일 북-미 두 나라 대표단이 베이징에서 만나 7월 마지막 주 6자 회담의 재개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2003년 북-미-중 3자 회담과 6자 회담 등 지금까지 한반도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몇 차례의 다자회의가 성사되는 과정에서 중국은 매우 중요한 중재자 구실을 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전과 같지 못한 듯하다. 지난 2월10일 북한이 핵무기 보유와 6자 회담 무기한 불참을 선언한 뒤 중국은 그 달 19일 왕자루이 중국공산당 중앙대외연락부장을 북에 파견하는 등 적지 않은 중재 노력을 기울여온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6자 회담 재개의 ‘열쇠’를 쥐고 있는 북한은 그 열쇠를 중국 쪽에 건네주는 대신 한국 쪽에 건네줬다. 미묘하지만 잘 관찰할 필요가 있는 변화다.
북한과 중국은 전통적인 우호국이지만 지난 10여년 사이 적지 않은 변화를 겪었다. 같은 ‘사회주의’ 나라라지만 두 나라 사회상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중국은 20년 개혁·개방과 시장경제 도입에 따라 정치제도를 빼면 자본주의 뺨칠 정도다. 1970년대까지는 북한이 상대적으로 풍요로웠으나 지금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런 연유로 중국 당국의 북한에 대한 태도도 크게 달라졌다. 경제 건설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가난한 ‘형제국’ 때문에 피곤하다는 투다. 중국의 한 관리는 북에 대해 이렇게 털어놓는다. “중국은 북에 대해 식량과 에너지를 대량으로 원조해 왔다. 그러나 중국 말을 가장 듣지 않는 나라가 바로 북한이다.”
북-중 사이의 교류는 중국공산당과 조선노동당 사이 ‘당 차원의 연락’을 통해 이뤄진다. 예전 같으면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는 외교부가 부럽지 않은 부서였다. 외교부 관리들도 당 대외연락부를 더 선호했다. 그러나 지금은 관계가 완전히 역전됐다. 비록 인원 적체로 진급이 느리더라도 관리들은 대부분 외교부에 남길 원하지 당 대외연락부로 가길 원하지 않는다. 대외연락부의 가장 중요한 상대의 하나가 북한이다. 이 때문에 중국 관리들은 “대외연락부는 북한 때문에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중국 쪽은 “김정일 위원장의 공식 직함이 ‘주석’ 등 국가 원수가 아니라 ‘국방위원장’이기 때문에 당 차원 교류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당 대외연락부는 외교부에 비해 권한 범위가 적은 게 현실이다.
북-중 사이의 미묘한 기류는 표면으로 거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잘 감지되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은 ‘종주국’ 행세를 하려 드는 중국의 태도에 적잖은 불만을 쌓아 왔다. 12~14일 중국이 왕자루이 부장 대신 탕자쉬안 국무위원을 북에 파견하면서 이례적으로 “후진타오 국가 주석의 특별대표(특사)”임을 강조한 건 북한의 이런 불만에 대한 반응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중국내 북한 외교가의 한 관계자는 “6·17 정동영 특사와 김 위원장의 회견으로 한국 정부가 중국 이상으로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으며, 또 해야 할 시기가 왔다는 게 내외에 공인됐다”고 적극적으로 평가했다. 이런 변화에 대해 베이징의 다른 외교 소식통은 “노무현 정권이 미국에 대해 상대적으로 자주적인 태도를 보임에 따라, 북한 또한 중국에 거리를 유지하는 태도를 취하는 게 가능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가장 절실하게 나서서 지혜를 짜내어야 하는 게 누구인지 일깨워주는 관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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