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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15 19:21 수정 : 2005.07.15 22:08

편집국에서

송전방식에 의한 대북 에너지 지원은 쉬운 일이다. 경수로를 포기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상대적으로 말하면 그렇다. 이미 들어간 경수로 공사비용 11억2천만달러 때문만은 아니다. 중대제안은 신포에 들어설 경수로가 만들어낼 환산하기 어려운 미래의 가치를 접는 것이기 때문이다. 12일 정부의 중대제안은 쉽고도 어려운 결정을 한 것이다.

경수로는 미국이 안 된다면 할 수 없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 경수로를 포기한 데는 북핵 굴레에서 벗어나야 하는 절박함도 고려됐을 것이다. 그러나 경수로의 포기를 제네바 합의 폐기의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이 북핵 문제 해결의 중요한 당사자로서 적극적인 구실을 하겠다고 밝혔다. 중대제안에서도 그런 의지를 읽을 수가 있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지난 10여 년 분단 이래 최대 규모의 한반도 협력사업이었던 경수로에 걸었던 기대와 희망을 접은 것이기 때문이다.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

제네바 합의가 가능했던 것은 경수로란 아이디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1994년 1차 핵위기는 한국형 경수로에서 탈출구를 찾았다. 그러나 제네바 기본합의문의 서명 당사자는 북한과 미국이었다. 94년10월 북한과 미국이 이 합의에 서명했을 때 남한은 ‘들러리’라는 비아냥에 시달려야 했다. 제법 긴 제네바 합의문에서 ‘남한’이라는 말은 찾아볼 수 없다. 김영삼 정부는 “본 합의문이 대화를 촉진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줄 것이기 때문에 북한은 남북대화에 착수한다”는 대목에 만족해야 했다. 그럼에도 남한은 경수로 건설비용 46억달러 가운데 70%에 해당하는 36억달러를 부담하기로 했다. 굴욕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7년 뒤 부시 행정부가 제네바 합의는 잘못된 것이니 고쳐야 한다고 나선 것이다.

2001년 제1기 부시 행정부 사람들은 출범하자마자 경수로는 안 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전력 생산의 일반 경수로에서도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다는 것도 그렇고, 북한은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한다는 극단적인 논리였다. 워싱턴에선 제네바 합의 수정론이 공공연히 나돌았고, 미국 의회 한쪽에서는 경수로 2기를 50만kW 이하의 석탄용 화력발전소들로 대체하는 법안이 준비됐다. 고맙게도 이 법안은 10억달러 규모로 추정되는 북한의 송배전선 재건도 다룰 것이라고 배려했다. 지금와서 보면 한국정부는 이 법안이 통과되도록 적극적으로 밀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2001년 6월 부시 행정부가 대북정책 재검토를 끝내면서 내놓은 것은 제네바 합의의 ‘수정’이 아니라 ‘이행 개선’이었다. 제네바 합의가 있는데 한국·일본에 대놓고 경수로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해 9월14일 우여곡절 끝에 신포 경수로 건설장에선 터닦기와 기반시설 정지작업을 마무리하고 땅파기 공사가 시작됐다. 돌아갈 수 없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뉴욕 9·11 테러 사흘 뒤였다. 당시 경수로기획단의 장선섭 단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경수로 사업은 남북 관계나 한반도 정세에 커다란 변화를 줄 만한 장애요인이 발생하지 않는 한 일정에 따라 멈추지 않고 진행되는 단계에 들어섰다.”

불과 1년 뒤인 2002년 10월의 이른바 2차 북핵 위기 직후 미국은 중유공급 중단 조처를 취했다. 잘못된 합의였으니 거침이 없었다. 그 뒤 북-미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제네바 합의를 파기시킨 것은 기억에 멀지 않다. 12일 서울에 온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중대제안을 ‘창의적’이라고 치켜세웠다. 6자 회담의 실질적 진전도 기대된다. 그런데 어째 씁쓸하고 허전하다.

강태호 정치부 외교안보통일팀장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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