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한용 정치부 기자
|
아침햇발
청와대 비서실의 비서관급 이상 명단을 들여다보면 ‘돌려막기’ 인사가 이뤄지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문재인 민정수석, 이호철 제도개선비서관, 김종민 국정홍보비서관 등 물러났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많다. 이리저리 자리만 옮긴 비서관들도 많다. 행정부로 돌아갈 관료 출신들을 제외하고 사람을 외부에서 충원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앞으로 행정부 고위직과 청와대 비서실 인사도 ‘자체 충원’이 원칙이라고 한다. 장관 자리가 비면 비서실장이나 수석비서관을 내보내고, 수석 자리는 비서관을 승진시키고, 비서관은 행정관을 승진시켜 쓰겠다는 것이다. 최근 청와대 비서관 인사를 앞두고 비서실에서 ‘그만두고 싶은 사람’을 조사했더니, 비서관 가운데 상당수가 물러날 뜻을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후임자들을 찾을 길이 없었고, 결국 나이가 많은 비서관 한 명과 목소리가 큰 비서관 한 명을 정리하는 선에서 마무리지었다고 한다. 청와대 비서관은 진이 빠지는 자리다. 유능하고 역량 있는 관료들도 2년 이상을 버티지 못한다. 진이 빠진 비서관들이 앉아 있는 청와대가 앞으로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최근에는 괜찮은 사람을 찾아서 정권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하면 “내가 왜 막차를 타냐”는 답변이 돌아온다고 한다. 대통령 임기는 절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런대로 실력있는 사람들은 벌써부터 몸을 사린다는 얘기다. 비겁하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노무현 대통령이 인사 정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개혁·진보 세력 전체의 책임도 크다. 개혁을 표방한 정권은 인재난에 시달렸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시절 재야 운동권 출신이나 시민단체 출신, 진보적 성향의 대학교수들이 상당수 정권에 참여했다. 결과는 대체로 실패였다. 노 대통령도 개혁·진보 성향의 인사들을 정권에 참여시켰다. 상당수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밀려 나왔다. 관료 집단의 조직적 따돌림도 있었다지만 그보다는 경험이 너무 없고 실력이 달렸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는 김영삼 김대중 정부 시절의 인맥이 이어지지 못한 탓도 있다. 개혁·진보 세력의 장점은 이론에 강하고 방향성이 명확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국정 운영은 명분만 갖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업무의 내용과 절차를 정확히 알아야 하고 현실적인 감각을 갖춰야 한다. 재야 출신 청와대 비서관은 “밖에서 비판하는 것과 안에서 직접 하는 것은 정말 다르더라”고 고백했다. 재야 및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의 실력 부족과 실패는 단순히 그들만의 일이 아니다. 수구·보수 세력의 복귀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부산·경남 출신 관료들의 도움을 받아 정권을 운영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호남 출신 관료들이 떠받쳤다. 개혁 정책은 표류할 수밖에 없었다.개혁·진보 세력은 지금부터라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그래야 미래에 대비할 수 있다. 이들은 특히 경제, 외교, 국방 등에 취약하다.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적극 참여해 정책 수립과 집행, 절차를 배워야 한다. 관료들과 함께 일하는 방식도 익혀야 한다. 개혁·진보 세력의 이데올로기를 정책으로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재를 길러야 한다. 제대로 된 연구소를 하나 만드는 방안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보수의 전도사를 자처하는 한 인사는 2002년 12월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한국의 보수는 더 고생을 해야 한다. 공부를 너무 하지 않는다”고 일갈한 일이 있다.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질책은 사실 지금 개혁·진보 세력에게 훨씬 더 절실한 얘기인지도 모른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