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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18 18:14 수정 : 2005.07.18 18:25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칼럼

86년 아시안게임 여자 육상 3관왕인 임춘애 선수는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라면을 먹고 뛰었다’고 말해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그 후 임춘애는 헝그리정신의 한 상징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얼마전의 일이다. 텔레비전에서 사회자가 임춘애의 라면신화를 신나게 얘기했더니 20대의 여성 연예인이 부러움에 가득찬 얼굴로 이렇게 말한다. “그 언니는 좋았겠다. 매일 라면을 먹을 수 있어서. 나는 살찔까봐 못먹는데.”

나는 가끔, 인간이 사회생활을 영위함에 있어 절대불가결한 권리라는 ‘기본권’에 대해 각자의 처지에 따라 이런 식의 현격한 인식차가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지난해 2월 전남 목포에서 장애인 부부가 10여만원의 전기세를 내지 못해 전기가 끊긴 집에서 촛불을 켜고 생활하다 화재가 발생해 목숨을 잃었다. 올해 7월10일 경기도 광주에서 똑같은 이유로 15살의 여중생이 불에 타 숨졌다. 그 며칠 후 민주노동당 조승수 의원이 서울 시내의 단전 가정들을 방문했더니 더운 여름밤에 선풍기도 사용하지 못한 채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살고 있더란다.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 없어 8만4천원의 전기세를 내지 못해 수개월째 단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요금 납부의식의 저하나 전기를 사용했으면 당연히 요금을 내야한다는 당위를 내세우며 형평성 운운하는 건 사치거나 야비한 짓이다.

지난 4월 조승수 의원이 에너지기본권이 포함된 에너지 기본법을 발의했지만 4월과 6월 임시국회에서 합의를 보지 못해 결국 법안은 9월 정기국회로 넘어갔다. 에너지 기본권은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전기, 가스 등을 사용하지 못하는 국민들에게 국가가 전기 등의 에너지 사용을 보장해 주는 권리이다. 에너지 기본권의 다양한 쟁점에 대한 이견을 주고 받는 사이 15살의 꽃봉오리 같은 소녀가 목숨을 잃었고 현재도 1천7백여 가구가 전기가 끊긴 채 ‘최소한의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 모든 정치적 조직의 목적은 인권 옹호에 있다는 말이 새삼 가슴에 와닿는다.

나는 ‘에너지 기본권’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얼핏 능력의 문제로 보이는 모든 사안에 대해, 기본권의 문제를 혹시 선택의 문제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따져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또한 기본권의 확대에 대해서 무한대에 가까운 가능성을 열어 놓을 수 있어야 성숙한 사회라고 믿는다. 세계보건기구에서 일했던 선배 정신과 의사의 경험담에 의하면 어느 나라의 정신보건법이 가장 이상적인가에 대한 전문가들의 판단 기준은 ‘법이 만들어진 후 개정된 횟수가 얼마나 많은가’였다고 한다. 영화속의 순정남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한탄할 수 있지만 기본권은 새로운 관점에서 더 정교하고 구체적으로 수정되고 확대되어야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에너지 기본권의 제정은 법리논쟁의 차원을 뛰어넘어 인간 존엄성의 실현을 담보하는 하나의 중요한 정치적 과제다.

나는 ‘조승수 에너지법안’이 정기국회에서 꼭 통과되길 바란다. 현재 조의원은 사전선거운동 혐의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는데, ‘대법원의 상식적인 판단을 청원’하는 탄원서 제출 등 무려 3만8천여명이 그의 구명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나 또한 그들의 구명운동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에너지 기본권이 제정돼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최소한의 생존권’조차 위협받는 이들이 사라질수 있도록, 나는 조승수 의원에게 여러 의미에서 누리꾼들의 말투로 아낌없는 지지를 보낸다. 조승수 홧팅!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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