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7.18 18:25
수정 : 2005.07.18 18:27
기고
재벌 총수들이 한자릿수의 적은 지분으로 계열사간 순환출자를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우리나라 대기업 집단의 소유지배구조 현황을 보면, 총수 일가 지분은 최소 0.8%를 비롯해 평균 4.94%에 불과한 반면, 계열사 지분은 평균 43.98%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결과 총수 일가가 실제 소유 지분보다 평균 7배나 되는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괴리도가 평균 2배 이하인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에 견줘보면 소유지배구조의 왜곡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그러나 공정위의 소유지배구조 공개와 관련해, 일부에서 “특정 그룹에 대한 보복이다”라고 주장하는 등 많은 오해가 빚어지고 있는데 이는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에 따라 지난해에 이어 예정대로 이뤄진 사안이다. 투자자들에게 좀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동시에 정부 직접규율에서 시장 자율감시로 바꿔가기 위한 조처이기도 하다. 특히 정부가 문제삼는 것은 개별 기업의 지배구조가 아니라 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라는 점도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기업집단 소유지배구조가 왜곡되면, 우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도입된 선진 내·외부 견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총수가 계열사 출자지분으로 계열사 임원 임명권을 통해 이사회를 장악하고 주주총회까지도 좌지우지함으로써 내부통제를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둘째, 독립·중소기업과의 공정한 경쟁이 저해된다. 대기업집단이 계열사간 부당지원행위 등을 무기로 삼아, 공정한 경쟁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보험사를 가진 집단과 그렇지 못한 기업과의 경쟁에서는 더욱 그렇다. 셋째, 기업집단에 속한 한 회사의 부실이 그룹 전체로 파급되어 동반부실화 및 국민경제 전체의 시스템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외환위기 당시 30대 기업집단 중 16개 기업집단이 퇴출된 것이 이를 실증적으로 말해준다.
물론 기업들이 어떠한 소유지배구조를 갖추어야 하는지는 정답이 없다. 국가마다, 기업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람직한 소유지배구조는 분명히 존재한다. 또한 지배구조 문제는 우리나라 정부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도 정부 차원에서 기업지배구조 문제를 오래 전부터 다루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기업집단의 지배 주주가 소유권을 남용해 소액 주주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이사회 독립성과 계열사간 거래에 대한 내부 통제, 소유지배구조의 공시의무 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기업지배구조 원칙’을 개정해 회원국들에 권고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지배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인정했던 차등 의결권을 폐지하는 등 지배구조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기업집단의 지배구조 개선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바람직한 소유지배구조의 핵심은 투명한 경영과 지배주주에 대한 실질적인 견제·감시가 가능한 체제를 갖추는 것이다. 그래야 기업의 가치를 높이고 나아가서 기업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배구조의 개선이야말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처하기 위한 최선책이기도 하다.
이병주/ 공정거래위원회 독점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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