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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19 17:26 수정 : 2005.07.19 17:27

경제전망대

“우리는 두렵지 않다.” <인디펜던트>의 특집 화보 제목이 말해주듯, 영국 언론이 런던 테러 뒤 공포와 무질서를 막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각별했다. 시민들도 대단한 자제력을 발휘했다. “테러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힘주어 말하는 블레어의 지지도는 5년 만에 ‘만족’이 ‘불만족’을 앞섰고, 철군 여론은 일시적일지 몰라도 쑥 들어갔다. 사회 혼란과 국론 분열을 노린 것이었다면, 테러리스트들의 의도는 빗나갔다. 한국 언론들도 영국의 위기관리 능력을 본받아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영국은 위기관리에 완전히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예상된 테러’를 막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위기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대규모 이라크 파병에 대해 ‘부시의 전쟁’에 블레어가 왜 들러리를 서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이 많았다. ‘블레어는 부시의 푸들’이라는 말도 그런 관점에서 나온다. 그러나 영국의 파병은 중동에서 이권을 지키기 위한 ‘계산’으로 파악하는 게 옳다. 중동은 2차대전 전까지 영국 뒷마당이나 다름없었다. 미국에 지배권을 넘겨주었으나 영국의 중동 이권은 미국 다음으로 많다. 이라크에서 프랑스와 러시아의 이권개입이 차단된 것도 이번 전쟁의 전리품이다.

석유산업은 금융과 함께 영국 경제의 버팀목이다. 매출액 기준 세계 5백대 기업의 2위(BP)와 4위(로열덧치-쉘: 네덜란드 합작)가 영국 석유회사들이다. BP는 이라크전 ‘덕분’에 기름값이 올라 매출과 순익이 급증하면서 선두 월마트를 바짝 뒤쫓고 있다. 다른 시장들은 런던에서 뉴욕으로 주도권이 넘어갔지만, 국제 석유거래에 관한 한 런던에 큰 장이 선다. 석유는 에너지원인 동시에 수만 가지 공업제품의 원료가 된다는 점에서 국가경제의 사활을 좌우하는 전략물자다. 걸프, 아프칸, 이라크전 등 현대의 대규모 전쟁들은 그럴듯한 명분과 달리 내막은 모두 석유로 발발한 것이었다. 일각에서 미국-중국의 ‘석유전쟁’을 예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떻게 보면 블레어가 부시를 돕는 게 아니라, 영국이 미국의 군사력에 편승해 자기네 이권을 지킨 것이라 할 수 있다. 블레어가 부시를 ‘경비견’으로 부리고 있는 꼴이다.

지난 한 세기 영-미의 대아랍정책은, 정치체제로는 이른바 ‘아랍적 외관’(Arab Facade)을 유지하게 하면서 석유이권을 헐값에 뽑아가는 데 본심이 있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때로는 ‘왕정복고’(사우디, 이란), 때로는 ‘민주주의 회복’(이라크)이라는 모순된 구호로 정쟁과 전쟁에 사사건건 개입한 것은 영-미 자본에 우호적인 정부를 수립하는 데 최고 정책목표를 두었기 때문이다. 자원확보를 위한 군사개입은 이제 아랍인들에게 ‘국가테러’로 인식된다. 보복테러는 사실상 미-영이 각오한 것이다. 이는 급진주의자의 과격한 주장이 아니다. 미 중앙정보국이 의회에 보고한 내용이다. ‘이라크 공격이 서구에 대한 테러위협을 증가시키고 테러리스트를 양산할 것’으로 예측하고서도 결행한 일이었다.

테러를 없애는 방법은 간단하다. 무고한 민간인을 살상하는 테러에 누구도 가담하지 않으면 된다. 타국 희생 위에 자국 이익을 취하는 과정에서 저질러지는 강대국의 ‘테러’도 예외가 아니다. 가장 효율적인 테러방치책은 원인 제거다. 그것은 테러에 굴복하는 게 아니라 테러를 굴복시키는 것이다. 테러에 맞서는 ‘용감한’ 정치인이 인기는 얻을지 몰라도, 테러를 두려워할 줄 아는 지도자가 국민의 생명을 구한다. <비비시> 마드리드 특파원은 ‘열차 폭파 뒤 스페인 국민들은 철군을 관철함으로써 테러 타깃에서 벗어났다’고 전했다. 한국은 어찌할 것인가?

이봉수/런던대 박사과정·경제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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