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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0 19:35 수정 : 2005.07.20 19:39

김종휘 문화평론가

야!한국사회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내가 푹 빠졌던 이유. 물론 삼순이 때문이다. 하나 삼순이네 세 식구 매력이 또 만만치 않다. 보면 주인공은 ‘잘나거나 악하거나’, 조연은 ‘비굴하거나 바보이거나’. 이런 미성숙형 인물들이 초지일관 ‘화신’으로 억지 카리스마를 뽐내거나 끝까지 ‘천사’여서 눈물만 쥐어짜는 게 드라마였다. 이점에서 삼순이네 여자 셋은 드라마에선 보기 드문 성숙한 인간들이다. 물정을 알고, 염치 있으며, 비굴하지 않게, 웃으며 산다. 한 마디로 철 들었다.

먼저 엄마 박봉숙(김자옥). 돈 많고 잘생긴 자식이 사위 삼아달라고 조르자 일단 때려눕힌 다음 술 따라주며 묻는다. ‘형광등 갈 줄 알아? 못 박아봤어? 김칫독 묻어봤어?’ 존경스럽다. 니 몸뚱어리 직접 움직여 살았는가를 확인한다. 남편 없이 아득바득 살아온 엄마를 촌스럽게 보는 서른 넘긴 두 딸년을 빗자루로 패가면서 인생의 궁상을 가르치는 예사롭지 않은 분이다. 이런 어른과 교육이 부재하여 우리네 가족과 학교가 맛이 간 거다. 박봉숙 여사는 놀라운 분이다.

다음 둘째 딸 이영(이아현). 외모를 내세워 유망한 남자 골라잡고 결혼에 성공해 미국까지 갔으나 이혼하고 돌아왔다. 방앗간 집 출신을 한탄하던 그는 친정에 오자마자 징그럽다던 떡을 배 터지게 먹더니 한 마디 한다. ‘이제 철 든 것 같다’. 범상치 않다. 이혼으로 엄마에게 몰매를 맞을지언정 줏대는 싱싱하다. 술 먹고 남자와 하룻밤 자면 여관 침대 머리맡에 10만원 남겨놓고 먼저 나온다. 섹스 중에도 남자가 반말 까면 바로 정색한다. ‘왜 반말해?’ 정말 가릴 줄 안다.

그리고 막내 삼순이(김선아). ‘개콘’ 출산드라를 빼면 ‘축복 받은 자’로서 ‘죄 지은 자들’ 앞에서 이다지도 기분 좋게 추앙받은 여주인공은 삼순이뿐이다. ‘전원일기’를 빼면 드라마 여주인공의 의상 치고 동대문 상가에서 복제하길 포기했던 진짜 생활 패션은 삼순이뿐이다. 좌절과 모멸을 겪을 때마다 정성껏 요리를 하고 미친 듯이 먹어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삼순이는 ‘복수의 화신’과 ‘눈물표 천사’로 살 수 없는 우리에게 말한다. 마음이 아프냐? 개뿔은, 일해라! 먹어라!

반면 호텔을 가진 나현숙(나문희) 여사와 그 엄마 덕에 레스토랑을 가진 아들 진헌이(현빈)는 철없다. 물정 모르고, 염치없고, 배려는커녕, 건방 떤다. 시청자는 두 가족을 보고 웃는다. 가져서 없는 자 돌보는 게 아니라, 성숙해서 미숙한 자 돌본다는 것. 암 투병으로 고통을 안 희진(려원)의 사랑법도 미덥다. 자신의 진정만 우기지 않고 상대의 선택을 지긋이 지켜보는 센스. 그러나 이 초특급 센스의 원조를 자처하는 문제의 인물은 따로 있으니, 바로 헨리 킴(다니엘 헤니).

제국의 코스모폴리탄, 혼혈의 메트로섹슈얼, 게이의 감수성…. 신께선 어쩌자고 이딴 걸 한 놈에게 합쳐놓았는지, 지금 난리 났다. 이 자가 말한다. ‘내가 봉이냐?’ 두루 잘났는데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며 사는 데다가 그런 애교까지 부리다니, 돌아버리겠다. 이처럼 성숙한 인간들 덕분에 덜 떨어진 진헌이네도 ‘구원’받는다. 아, 풍요로워라. 근데 오늘 밤이면 ‘내 이름은 김삼순’도 끝난다. 그럼 뭘하지? 막 나가는 이 험한 세상, 성숙하게 웃으며 사는 흉내라도 내볼까.

김종휘/ 문화평론가 하자작업장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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