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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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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지금 30대 중반 이상의 연령층에는 1985년 영국 출신의 유명한 록 가수 봅 겔도프가 주도한 ‘라이브 에이드’(Live Aid)라는 음악회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연예인들이 국제 문제에 개입한다는 것이 생소하던 우리나라에서는 록 가수들이 음악회를 열어 그 수익금으로 아프리카 나라들을 돕자고 하는 것이 무척 신선한 충격이었다. 20년이 지나 이제 50줄에 접어든 겔도프가 또 나와서 7월7일 ‘라이브 에잇’(Live 8)이라는 자선 음악회를 주도했다. 지속되는 아프리카의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선진국이 외채를 탕감하고 원조를 증대시켜야 한다는 후진국 빈곤퇴치 캠페인 단체들의 주장을 당시 스코틀랜드의 글렌이글스에서 열리고 있는 강대국들의 회의인 주요8국(G8) 회의에 전달하겠다는 뜻이었다. 이에 답하여 정상들은 2010년부터 후진국에 대한 원조를 연간 480억달러씩 늘리고(2004년 대비), 외채가 많은 나라 중 18개국이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에 지고 있는 빚을 탕감해 주기로 하는 결의를 했다. 겔도프는 “10점 만점에 10점”이라며 이 결의를 칭찬했다. 그러나 개발문제 전문가들은 480억달러라는 액수의 대부분이 이미 주기로 한 원조를 “재포장”한 것으로 실제 원조 증가는 200억달러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그나마 그것도 당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5년이나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부채 탕감에서도 고외채에 시달리는 나라가 70여개국인데 부채를 탕감받은 나라는 불과 18개국이며, 그것도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에 진 빚만 탕감되는 것이고 민간 부채는 그대로 남는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걱정스러운 것은 이런 원조 증대나 부채 탕감에 붙는 조건들이다. 선진국들은, 원조를 더 주거나 부채를 탕감해 주어 보았자 그 돈을 잘 이용하지 못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후진국들에 이를 위해 ‘좋은’ 정책과 제도를 채택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들이 추천하는 좋은 정책과 제도란 무엇인가? 후진국 기업들의 적응력을 고려하지 않은 급격한 무역 자유화, 국내 경제에 대한 파급효과를 고려하지 않은 자본시장 개방, 옥석 구분 없는 민영화, 무차별적인 규제완화, 후진국에 더 중요한 고용 창출과 성장보다는 물가안정을 우선하는 거시정책, 특허권 등 지식재산권에 대한 과대한 보호 등이 그 내용이다. 이렇게 본다면, 1960~70년대에는 1인당 소득이 연간 1~2%라도 성장하던 아프리카 나라들이 이러한 ‘좋은’ 정책과 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한 80년대 이후에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해 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아프리카 나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자신들의 발전단계에 맞지 않는 시장 자유화와 개방정책이 아니라, 적절한 유치산업 보호와 자본시장 규제를 통해 경제 발전을 이루어 장기적으로 자활하는 것이다. 선진국들이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등을 통해 강요하는 조건들을 통해 이런 자활의 길이 막혀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원조를 늘리고 부채를 탕감해 주어도 아프리카의 빈곤 문제는 풀리지 않을 것이다.50년대 말까지만 해도 선진국 원조기구들 사이에서 “밑 빠진 독”으로 폄하되다가 60년대 이후 적절한 유치산업 보호와 자본시장 규제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룩해 이제는 선진국 말석에나마 끼게 된 우리나라가, ‘자선’보다는 ‘자활’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선진국들의 대후진국 정책을 바꾸는 데 앞장설 수는 없을까?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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