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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5 18:00 수정 : 2005.07.25 18:02

류재명 서울대학교 교수·지리교육과

기고

서울대학이 ‘통합형 논술고사’를 도입한다는 입시 계획을 발표한 이후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다. 급기야 김진표 부총리가 대입 논술고사 심의제를 도입하겠다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각 대학의 논술고사를 심의해 본고사를 시행하거나 ‘허용될 수 없는 논술고사’를 치른 대학에 대해서는 행ㆍ재정적 제재를 가할 방침이라고 한다.

그런데 대학의 논술고사가 왜 이렇게 뜨거운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선진국 대학입시에서 이미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논술을 우리나라 대학입시에서 도입한다고 하여 무슨 문제인가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나라의 제도를 받아들일 때에는 먼저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이에 우리가 시도하고 있는 방식은 선진국에서 하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며, 크게 왜곡되어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먼저 소위 선진국에서 중요시되고 있다는 논술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는 논술과 개념이 크게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우리는 대부분 논술하면 국어교과에서의 글쓰기 문제로 생각한다. 다른 교과 교사는 논술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선진국에서 말하는 논술이란 지리나 역사, 사회, 혹은 과학교과의 시험문제를 논술형으로 출제하여 평가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실시한다는 논술시험은 시행주체가 대학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논술의 본고장이라고 하는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영국의 A레벨 시험, 미국의 SATI(대학능력시험) 등은 개별 대학별로 실시하는 것이 아니다. 선진국에는 개별 대학이 독자적으로 입학 지원자의 논술능력을 측정해보자고 나설 정도로 그렇게 ‘한가로운’ 대학은 없다.

미국의 대학들은 입학지원서를 받을 때 에세이를 함께 요구한다. 미국의 대학에서 그러한 에세이를 요구하는 것은 누가 더 ‘우수한 학력’을 가졌는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정신’과 ‘태도’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처럼 학생들이 한날한시에 대학에 가서 주어진 문제에 답안지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논술’ 능력을 평가하는 것도 아니다. 지원자가 마음먹은 때부터 언제든지 글을 작성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도 된다. 우리의 고3에 해당하는 12학년이 되면 몇 달에 걸쳐 글을 작성하기도 하며, 부모·교사와 함께 작성하기도 한다. 자기 소개서나 미래 계획서를 작성하는 것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많고, 대부분 공부의 부담을 갖고 쓰는 글이 아니다. 이렇게 집에서 여유를 갖고 작성하여 우편으로 대학에 제출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보면, 우리나라 대학의 논술고사는 결코 선진국 문화라고 볼 수 없다. 선진국의 입시 제도를 빌려온 것이라고 하지만, 교육의 기본정신에서 크게 벗어난 왜곡된 방식이라는 것이다. 대학은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는데 전념해야 한다. 대학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원자의 실력을 ‘정확하게’ 측정한다는 명목으로, 논술입시를 위하여 출제·감독·채점 등을 하는데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는 입학한 학생들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데 총력을 쏟아야 한다.

정부도 본고사를 무조건 반대하기보다는 대학이 보다 창의적이고 논리적 사고력을 가진 입학생을 선발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주어야 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논술 문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그리고 중등교육에서 학생들의 논술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장 학교의 각 교실에서 학생들이 논거를 제시하면서 ‘긴 글’로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끔 지원체제를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대학별 논술고사로 학생들 우왕좌왕하게 하지 말고.

류재명/서울대학교 교수·지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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