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7.26 18:10
수정 : 2005.07.26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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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식 한동대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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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할 수만 있다면, 오늘 하루 여러분의 통화 내용을 모두 녹음하여 한꺼번에 들어보십시오. 전혀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직장 상사로부터 전화가 왔다고 칩시다. 물론 공손하게 전화를 받겠지요. “예, 예, 김 부장님께서 저를 도와주시지 않았더라면 큰 일날 뻔했습니다. 이 은혜를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1분 후 여러분은 직장 동료에게 전화해서 불량스런 목소리로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맞아. 김 부장 그 개XX 말이지. 자기 욕심만 차리고, 책임을 부하들에게 미루면서 생색은 엄청 낸다 말이야.”
하루에도 열두 번씩 상대에 따라 말을 바꾸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심심치 않게 거짓말도 합니다. 내가 들어봐도 추한 나의 모습인데, 그 통화 내용을 다른 사람이 듣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끔찍하지 않습니까. 도청의 문제는, 단순히 나의 ‘비밀’이 다른 사람 또는 국가기관에 알려진다는데 있지 않습니다. 나의 벌거벗은 ‘인간성’이 도청을 통해 알려진다는 것이 오히려 더 큰 문제입니다. 우리의 벌거벗은 모습을 혼자 훔쳐본 권력자는 스스로를 ‘전능한 하나님’으로 착각하게 되고, 한 번 맛들인 그 놀라운 정보의 노예가 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불법이든 합법이든 모든 도·감청은, 하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 모두의 인간성을 파괴합니다.
사생활의 비밀을 강조하는 글을 쓸 때마다 ‘크게 나쁜 짓 하고 살 사람 같지 않은데, 김 변호사는 무슨 비밀이 그렇게 많아서 허구한 날 사생활 타령인가?’ 저에게 농담을 던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누가 나쁜 짓을 얼마나 하고 사느냐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나만 깨끗하게 살면 되는 것 아니냐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삶에는 은밀하게 감춰져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아닌 이상 누구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이번 도청으로 알려진 내용들은 한 마디로 ‘엽기적’입니다. 사과문에서까지 여전히 시민들을 한 수 가르치려 하는 삼성이나, ‘자기 입맛대로 짜 맞춰 보도하기’를 계속하는 파렴치한 거대 언론들의 태도도 참기 힘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에서 우리가 1차적으로 문제 삼아야 할 대상은 도청을 자행한 안기부 사람들과 그 윗선입니다. 먼저 그들을 찾아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묻는 일에 국회와 행정부가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물타기를 하자는 게 아닙니다. 언론은 죽을 각오로 취재에 나서야 합니다. 미림팀장 같은 사람들을 조금만 더 ‘흥분시키면’, 언론들이 ‘발칵 뒤집어질 날이 올 것’이므로 모든 문제가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가면을 지금 벗겨내지 못하면, 우리는 곧 기술발달의 ‘은혜’로 ‘도청 천국’에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천국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일찍이 우리에게 제시한 분이 정형근 의원입니다. 몇 년 전 <주간조선>의 보도에 따르면 정 의원은 “휴대 전화를 10여 대 가지고 다니며 한 달에 2~3개는 전화번호와 기기를 바꾸고 측근에게도 번호는 1개만 가르쳐 준다”고 합니다. 기자들도 그와 통화하려면 보좌관에게 연락을 한 다음, 전화 오기를 기다려야 한답니다. 설마 그 분이 ‘불법’도청을 자행한 적은 없겠지만, 생활방식으로 미루어볼 때 누구보다 도청을 잘 아는 분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이 남자의 사는 법’이야말로 ‘휴대 전화가 도청 가능하냐?’는 식의 유치한 논란에 대한 분명한 해답입니다.
우리 모두 정형근 의원처럼 살아야 하는 세상, 어쩌면 이번이 그런 생지옥을 막을 마지막 기회일지 모릅니다.
김두식/한동대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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