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7.27 18:06
수정 : 2005.07.27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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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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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칼럼
해와 달이 하늘에 함께 떠 있었다. 7월23일 새벽 5시 아직 지지 않은 열이레 달이 백두산 꼭대기에 동그란 은빛 그릇처럼 떠 있고, 동쪽 끝 구름의 바다 위로 붉은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제 자리에 서 있을 수 없게 몰아치던 바람도 잠시 거친 숨을 멈추었고 천지 물은 고요하고 정갈하였다.
동쪽과 서쪽 하늘에 공존하는 둥근 해와 달 아래 60년만에 만난 남과 북의 작가들이 함께 서 있었다. 참으로 인상적이고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고은 시인은 전날 밤에 쓴 시를 격정적으로 낭송하였고 북의 소설가 홍석중 선생은 시에 감동하여 “여기서 더 무슨 말을 하겠느냐, 한 마디도 더 보탤 말이 없다.”고 하면서 감동적인 즉석 연설을 하였다. 그러나 한평생 분단의 상처를 안고 살아 왔다는 그의 말에 나는 가슴이 아파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속으로 삼키며 서 있었다. 소설가 정지아씨가 낭송한 고 김남주 시인의 시 <조국은 하나다>는 이날을 위해서 써둔 시 같았다.
백두산 통일문학의 해돋이 행사는 진한 감동의 기억을 가슴에 심어 주었다. 현기영 문예진흥원장의 말대로 “이 민족 이 강토는 하나의 핏줄, 하나의 혈맥으로 연결된 유기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청춘송가>의 저자인 북의 남대현 선생은 “천시는 지리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만 못하다.”는 말을 하면서 남북작가들의 인화를 강조하였다.
논어에서도 화이부동()하여야 한다고 했다. 화합하고 화목하되 똑같아지기를 바라며 지배하고 억압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동이불화()하는 경우가 더 많다. 같은 점이 많아도 서로 화합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을 소인배라고 했다. 화의 논리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며 공존 공생하려는 평화의 논리이다. 동의 논리는 자기중심적이고 지배하고 흡수하려는 힘의 논리이다.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에 참석한 작가들이 합의한 대로 6·15민족문학인협회를 만들고 민족자주 반전평화 통일애국의 정신으로 연대하고 문학창작을 하려면 동의 논리, 힘의 논리가 아닌 화의 논리, 공생 공존의 논리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매년 어려운 조건 속에서 홍명희문학제를 해왔다. 올해로 십 년째다. 그동안 많은 연구 성과도 있었고 문학비도 세웠으며 생가를 다시 복원하고 있다. 북으로 갔다가 전쟁 중에 병사한 오장환 시인의 문학제도 10년째 해오고 있고 올해 문학관과 생가가 세워질 예정이다. 그러나 이 문학관과 생가에 채울 유품이나 사진이 남쪽 자료만으로는 너무 부족하다. 나는 북의 리호근 시인에게 문학관에 문학적 내용을 채울 자료들을 다만 몇 점이라도 보내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고 북측 민화협에 상의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남에서 북으로 가서 작가대회를 하고 북에서 남으로 문학 자료를 보내주어 문학사의 공백을 복원하고 조금씩 분단의 골을 메워나가는 길 그것이야말로 통일문학사를 써나가는 작은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인천에서 평양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다가 소설가 정도상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백 사람이 한 발짝씩 이란 말을 믿지 않아요. 백 발짝을 앞서가는 한 사람이 있어야 돼요.”그러자 작가회의 김형수 사무총장이 그 말을 받았다. “백 발짝을 혼자 앞서가도 수백 사람이 뒤를 따라 걷지 않으면 길이 되지 않아요.”두 사람 말이 다 맞는 말이다. 민족의 평화와 통일 화해와 공존을 향해 가는 문학의 길도 그와 같을 것이다.
시인 도종환
◇알림=도종환 시인이 ‘안경환 칼럼’의 뒤를 이어 새 필진으로 합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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