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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8 17:42 수정 : 2005.07.28 17:43

유레카

예로부터 ‘6’이라는 숫자는 성취·완성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상황을 상징해 왔다.

과거 동아시아에서는 유학자들의 필수 교양과목으로 ‘육예’가 있었다. 예(예절) 악(음악) 사(활쏘기) 어(말타기) 서(글쓰기) 수(산술)가 그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지·덕·체를 아우른 초·중등 교과다. 육예를 습득한 뒤에는 사서오경 등을 익혀 자아 완성으로 나아가게 된다. 근대 이전 우리나라와 중국의 각급 정부도 이·호·예·병·형·공의 6부를 기본으로 했다. 정부를 완성하는 사람은 물론 임금이다.

인간에게는 색(시각) 성(청각) 향(후각) 미(미각) 촉(촉각)이라는 다섯 가지 감각이 있다. 그런데 대상을 제대로 감지하려면 여기에다 ‘육감’을 추가해야 한다. 육감은 다섯 감각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 완성으로 향하게 하는 그 무엇이다. 라틴 문화권, 곧 지중해 연안과 남미 나라의 사람들은 점심식사 후 낮잠을 자는데, 이를 ‘시에스타’라고 한다. 라틴어 ‘섹스타’에서 유래한 이 말은 해가 뜬 때부터 여섯번째 시간을 뜻한다. 한낮의 적절한 휴식은 하루의 성취를 위한 좋은 굴림판 구실을 하니, 여기서도 ‘6’의 의미가 살아난다.

서양문명에서 가장 뚜렷한 ‘6’의 상징은 신이 엿새에 걸쳐 세상을 만들었다는 성서 내용에서 나온다. 이 엿새에 일요일을 더해야 일주일이 된다. 엿새 동안 성실하게 일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생활의 완전한 주기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6’은 ‘완성을 눈앞에 둔 미완성’인 셈이다.

지금 중국 베이징에서는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 회담’이 열리고 있다. 21세기 한반도의 명운을 가름할 수도 있는 회담이다. 참가국 모두 사안의 절박성을 잘 알고 있는 터여서 일정한 성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여섯 나라가 선의를 갖고 완성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슬기를 모은다면, 이만큼 ‘6’의 의미에 걸맞은 일은 없을 것이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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