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7.28 17:44
수정 : 2005.07.2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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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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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한국사회
“괴로워서 한동안 구독을 포기한 적이 있다”는 누군가의 고백처럼 격월로 받아보는 한 생태잡지를 펼쳐볼 때마다 복잡한 심경이 되곤 한다. 농업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절박한 고민을 수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구나 하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서도, 앉은 자리는 한치도 이동하지 못하는 스스로의 무기력함 때문이다.
‘빼앗겼던 들에 봄은 왔는가’라는 절박한 글을 보면서 농사짓는 한 아버지의 가슴 무너지는 눈물이 떠올라 글자 한자한자가 흐릿흐릿해진다.
2003년께 국회 앞에서 이뤄진 한·칠레 자유무역협상(FTA) 반대시위에 참가하였다가 난생 처음 유치장에서 밤을 지새야 했던 한 아버지를 변론하게 되었다. 고향땅에서 태어나 그 땅을 지키며 외길 30여년 농사만 지은 그 분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부인과 자녀 둘을 둔 가장이다.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이웃 농민 몇 명끼리 서로 보증을 해주고 농협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비닐하우스를 확장하였다가 이웃이 망하는 바람에 졸지에 집 팔고, 논밭 다팔아 보증빚을 갚고도 모자라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그나마 여기저기서 빌린 돈으로 간신히 1년 농사를 마친 즈음 가격이 폭락하여 수확하는 즉시 빚만 불어나는 기현상을 흙을 모르는 도시변호사가 이해할 수 있냐”고, “아버지 노릇도 변변히 못 하였는데 이렇게 갇혀 있으니 입시를 앞둔 큰딸을 멀리 떨어진 학교까지 누가 데려다주냐”며 소의 눈망울처럼 정말 크고 순박한 두 눈으로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그 분의 앞가슴 옷섬까지 다젖어버린 그 눈물속에 나는 그 순간 농부의 딸이었다. 난생 처음 판사와 검사 앞에서 변론을 하는 와중에 정말 변호사답지 못하고 농부의 딸답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눈물 콧물 다 흘려가며 솟구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고, 그 당시 법정에 앉아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시울을 붉혀야 했다. 다행히 그 분은 풀려났지만 한·칠레 자유무역협상 비준안이 통과된 후 농사짓기가 겁이나 이젠 거의 포기하신다 한다.
올해 6월초 정부가 쌀협상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며, 이면합의가 있었느니 갑론을박이 진행중이고, 3만명이 참가한 농민총파업이 있었다. 그 당시 인솔하던 한 경찰관이 남긴 “우리도 괴로워요. 고향이 농촌 아닌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라는 말처럼 농촌은 우리 생명의 뿌리이다. 그 뿌리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2000년 현재 약 5,000개의 농촌마을이 사라졌다고 한다. 혼자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필수품이 청산가리라는 말도 전해진다. 몸을 다치거나 병에 걸려 거동을 못하게 되면 자식 고생시킨다고 자살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게 사람사는 세상의 이야기인가. 그런데도 농업정책에는 더 이상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장기적인 정책수립 그 어디에도 농민은 없다라는 냉정한 비난을 받기도 한다. 제대로 된 방향과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된다면 그래서 농민과 농촌과 농업이 어느 정도 부활할 수 있다면 설사 약간의 불이익이나 비용 부담은 충분히 감수할 의향이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제발 큰 그림을 그려주기 바란다. 농축산물 수입개방, 수백만의 동포를 사지에 내몰며 얻은 경제적 이익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쌀협상, 진정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지 그렇다면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들을 설득하여야 한다. 그것이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진선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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