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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01 18:56 수정 : 2005.08.01 19:07

이종원 일본 릿쿄대학 교수, 국제정치

세상읽기

미국의 외교정책은 전통적으로 “선교사적 외교”(missionary diplomacy)라 불려왔다. 권력과 이해관계를 둘러싸고 복잡한 거래를 되풀이하는 유럽과는 달리 이념과 원칙를 내세우는 비타협적 외교라는 의미다. 미국의 외교관으로 “봉쇄정책”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당사자인 조지 케넌 자신이 이를 “법률가적 도덕가적 외교”라 지칭하고 그 경직성과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어느 나라나 대내외 정책에서 보편적 가치를 내건다. 그러나 미국처럼 “자유”와 “민주주의”와 같은 추상적 원칙을 단순히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추구하려는 나라는 많지 않다.

이에 반해 이런 선교사 외교의 이면에 권력정치적인 현실주의 외교가 맥을 이어 전해져온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유러시아 대륙의 동쪽과 서쪽에서 각기 배타적인 세력권이 형성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 19세기 말 열강으로 등장한 이래 미국 대외정책의 기본목표였다. 그 구체적 전개에 있어 모범이 되어온 것이 영국의 유럽대륙에 대한 세력균형(balance of power) 정책이었다. 강자의 등장을 억제하기 위한 대항동맹 형성이며, 이를 통한 지역질서의 원격조정(remote control) 방식이다.

지난 한세기 동안의 미국 동아시아 정책은 큰 구도로 보면 중국과 일본이라는 지역의 주니어 파트너 사이의 “시계추 전략”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1905년의 러일전쟁까지는 일본, 그 이후 1945년까지는 중국, 45년 이후 70년대까지는 일본, 70년대 이후 현재까지는 예컨대 클린턴 정권의 미-중간의 전략적 파트너십, 부시 정권의 미-일동맹 강화처럼 더욱 빈번하게 시계추가 움직여왔다. 시계추 움직임의 동기는 더 약한 쪽과의 동맹이지만, 그때마다 보편적인 가치관을 공유하는 동맹국으로 표현된 것도 미국다운 점이었다. 근대화의 모범생 일본,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인 중국, 자유진영의 일본, 경제동물 일본의 이질성 등 그때마다 미국의 파트너 선택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얼마든지 있었다.

지금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이 두 가지 흐름이 공존하면서 교차되고 있는 구도로 이해할 수 있다. 대두되는 중국에 대한 군사적 억제와 전략적(외교 경제적) 관여, 군사와 외교, 미-일동맹 강화와 미-중간의 전략적 협조 등이 복잡하게 어우러지고 있다. 관료기구로 보면 국방부와 국무부의 갈등이며, 네오콘 군부 강경파 동맹과 현실주의자 및 재계 연합 사이의 다툼이라 할 수 있다. 정책적으로는 중국을 겨냥한 미사일 방위와 확산방지구상(PSI) 등 군사대항체제와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 안전보장체제 사이의 갈등이다.

두 흐름의 상대적 힘관계에 따라 한국의 외교적 입지와 선택지도 크게 제약된다. 네오콘 군부의 구도에서는 한반도는 ‘신 애치슨 라인’ 아니면 ‘신 38선’이 그어진다. 반면 미-중협력 구도에서는 한반도의 전략적 중립화나 아니면 한반도 전체에 대한 미국의 외교적 영향력 확대로 귀결된다.

부시 정권 1기 때에는 “총맞아 죽을 일”이던 북-미교섭이 베이징에서 진행되고 있다. 부시 정권의 변화는 단순히 대북정책의 전술적 전환이 아니라 동북아시아 지역의 큰틀짜기와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한반도 냉전구도를 해체할 큰 기회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강대국 중심의 질서에 매몰되지 않고 한국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서 외교적 지혜와 역량을 모아야 할 때다.

이종원/ 일본 릿쿄대학 교수, 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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