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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01 19:48 수정 : 2005.08.01 19:50

홍기빈 캐나다 요크대 박사과정·정치경제학

야!한국사회

세칭 ‘엑스파일’의 뚜껑이 열리자 무수한 쟁점들이 그야말로 파상적으로 터져나오고 있어서 갈피를 잡기가 힘들다. 하지만 지배층과 백성들 각각의 이해라는 틀로 정리해보면 세 가닥으로 묶어낼 수 있다. 첫째, 백성들에게 있어서 절실한 쟁점. 둘째, 지배층 전체에게 중요한 쟁점. 셋째, 지배층 내의 여러 분파들이 내놓는 쟁점들.

우리 사회의 지배층 내부는 정당, 언론사, 대기업, 정부 기관 등을 아성으로 삼은 다양한 집단 간의 갈등 관계로 점철되어 있다. 이 집단들이 평소에 벼르고 미워하던 다른 집단들을 이번 건에 어떻게든 함께 엮어보려는 심산으로 저마다 공세를 펼치고 있다. 그러한 어지러운 각축전으로 인해 무수한 의혹의 불똥이 주미 대사를 필두로 다수의 전직 대통령들에 이르기까지 사방으로 튀고 있다.

하지만 ‘불법 도청과 보도’라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지배층 모두가 일정한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엑스파일’에 출연하는 당사자들인 삼성과 중앙일보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지배층 집단의 입장에서도 현재의 사태는 바람직한 일일 수 없다. 사실 ‘엑스파일’이라는 것도 내용만을 놓고 보면 그 동안 증거가 없을 뿐 대충 모두들 짐작하던 바일 뿐이다. 지배층 내부의 상식에서 보면 대선 자금을 논의하던 두 사람도 심지어 그것을 도청한 사람들도 그저 대통령 선거라는 시기에 즈음하여 각자 해왔던 ‘정상적’ 업무를 수행한 셈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이 호텔의 밀실과 권력의 안가에 머물지 않고 백성들 앞에 마구 드러나버리는 사태는 지배층 전체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확실히 단도리해 두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 ‘각축전’의 승패 혹은 불똥의 방향 따위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떤 세력이든 내건 깃발이 무엇이든 법과 정의를 어긴 만큼 응분의 처벌을 받으면 그만이다. ‘불법 도청과 보도’ 건에 이르면 쓴웃음만 나온다. 이런 심각한 국면에서 권력 전체가 느닷없이 ‘개인 사생활’의 전투적인 수호자로 변하는 촌극은 낯설지 않다. 92년 대선 당시 터져 나왔던 ‘초원 복집’ 사태를 김영삼 후보는 ‘불법 도청의 문제’로 규정했으며 그 근절을 다짐했던 바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엑스파일’의 ‘불법 도청’이 바로 그 김영삼 정권의 정보 기관에 의해 벌어졌던 것을 볼 때, 백성들은 권력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 이루어지는 것이 도청이요 그것을 근절하겠다는 말은 기실 그것을 다르게 사용한 자들의 괘씸죄를 다스리겠다는 말에 불과하다고 밖에 생각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백성들 입장에서 간절한 문제는 따로 있다. 이 사건은 몇 사람 처벌하고 끝낼 부정 부패 사건이 아니다. ‘엑스파일’은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표방하는 우리의 정치경제 질서가 소수의 권력 집단과 그들의 사적 이익에 의해 어떻게 유린되는지를 낱낱이 파헤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이다. 그 몇 백억원의 댓가로 어떠한 특혜가 삼성에게 주어졌는가 그리고 그 비용은 누구에게 전가되었는가 그리고 그러한 주고 받음의 연결 고리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지금은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모두 밝혀야 한다. 문제의 대화가 이루어지던 97년 당시 터진 아이엠에프 이후 백성들은 시장 경제의 회생이라는 약속을 믿고 고용 불안과 빈곤 등 온갖 고통을 감수해왔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응당 그것들을 캐내도록 요구할만한 이유와 권리가 있다.

이 세 갈래의 문제들을 어떤 비중의 배분으로 풀어가느냐는 우리 정치경제 질서가 향후 나아가게 될 경로를 가늠할 중요한 시금석이다.

홍기빈/캐나다 요크대 박사과정·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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