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02 20:14
수정 : 2005.08.0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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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한신대 교수ㆍ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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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망대
한국은 드라마의 나라다. 잘 만든 지상파 드라마가 인기를 끌더니 그보다 더 드라마틱한 도청테이프가 쏟아지고 있다. 그러던 중 예고편이 계속되던 중국 위안화 절상이 전격 단행되었다. 절상 폭이 2.1%에 불과했던 데다가 절상 이후 위안화 환율 변동폭도 중국 정부가 허용한 하루 변동 폭(상하 0.3%)에 훨씬 못 미쳐서인지 반향은 크지 않다. 그러나 위안화가 힘을 키우는 변화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작지 않다.
먼저 주목할 점은 이번 조처가 중국의 주도 아래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과 일본에서는 지나치게 낮은 위안화로 중국이 무역상대국의 고용을 빼앗고 디플레를 수출하고 있다는 비판과 압력이 있었다. 미국 의회에서는 위안화가 40%는 절상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분분하였다. 이에 대해 중국은 소폭의 평가절상으로 답했고, 중앙은행장이 “정부가 주도하는 추가적인 환율 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중국의 위안화 절상에는 오히려 국내경제의 불균형을 조정하겠다는 의도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1994년 대폭적인 평가절하와 환율제도 변경 이후 10년간 중국의 수출액은 약 5배, 무역흑자액은 6배로 늘어났다. 거액의 투자가 제조업에 몰려들었으며 수출은 매년 30% 전후로 증가했다. 흑자 기조가 정착된 가운데 위안화 절상을 노리는 투기자금 때문에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7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 자금은 주로 미국 채권 구입에 사용되었고, 이에 따라 필요 이상으로 미국의 채권ㆍ금융시장의 영향을 받는다는 자각이 생겼다. 달러에 고정시킨 위안화가 지나치게 낮게 평가됨으로써 통화투기의 위험이 생겼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은 위안화 평가절상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급격한 환율 변동은 금융시스템과 경제성장에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본이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의 평가절상으로 급속하게 버블 붕괴 국면에 들어섰다는 교훈을 되새기고 있을 것이다. 대신 중국이 잡은 카드가 통화바스켓 제도이다. 위안화를 달러화 하나에 페그시키던 데에서 몇 개 통화를 바스켓으로 묶은 뒤 이들 통화의 환율 움직임을 가중평균해 위안화 가치를 연동시키는 것이다. 중국 당국이 직접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바스켓 통화의 비중은 미국 달러화 33%, 일본 엔화 29%, 유로화 27%, 한국 원화 11%가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외형상 자유변동환율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중국과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통화 당국이 원-달러 환율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수시로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환율체제를 묵시적 달러페그제 또는 연성 달러본위제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런데 원화의 불안정은 외환시장에서의 원-달러의 수급 교란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엔-달러 환율의 불안정에서도 온다. 원-달러 환율의 안정을 위해 엄청난 비용을 투입하고 있지만, 미국과 일본이 합의하여 환율을 유지하지 않으면, 그 목적을 이룰 수 없다.
변형된 달러본위제보다는 통화바스켓제가 거시경제 안정에 유리하다. 그러나 대부분 주류 경제학자들은 실제 운영되지도 않는 자유변동환율제만을 지지하고 있다. 위안화는 빛을 감추고 어둠을 다스리는 중에도 ‘작위(作爲)’를 모색하는데, 원화는 망연히 굴레에 매여 있는 것 같다.
이일영/한신대 교수ㆍ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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