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03 19:00
수정 : 2005.08.03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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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창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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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난 살쪘다. 어머니가 장모님은 ‘딱 보기 좋다’고 하지만 살쪘다. 오랜만에 처음 보는 사람들의 하는 인사는 대부분 ‘더 좋아지셨네요’다. 좋아졌다니 좋아해야 되는데, 기분 나쁘다. 그래서 ‘아뇨, 피곤해서 부었어요.’라고 한다. ‘당신처럼 센스 제로인 사람하고는 일 안해요’라고 말하고 싶은 욕망이 목구멍을 간지른다. 사랑스러운 사람들은 대부분 ‘힘든 일 있으셨어요? 살이 빠지셨네요.’라고 인사말을 건넨다. 복받을 것이다. 얼마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한 끼에 8공기나 먹어도 허리가 28인치에 불과한 저주받을 만한 청년이 나왔고, 이 이야기를 내 블로그에 올리자 나와 비슷한 연배의 모출판사 이사가 ‘식전 바나나 3개 섭취로 20kg 감량’이라는 비법을 가르쳐줬다. 오호라! 이 원고만 끝나면 할인점으로 달려갈 태세다. 그런데 과연 식전 3개씩 바나나를 섭취할 수 있을까? 그 전에 아내와 시도한 식전 마른 청국장 40알 섭취도 한 달도 못 갔으니, 아마 바나나도 금방 시들해 버리지 않을까 한다.
2005년 대한민국에서 살찐 사람은 대개 게으르거나, 끈기가 없거나, 열정이 없는 존재들이다. 온통 주위에 마른 사람들로 가득하니, 살찐 사람의 자존감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여자 연예인들의 몸무게가 키와 상관없이 45kg으로 동일할까. 누구말대로 그들은 45kg의 호문클루스다. 김삼순으로 분한 김선아가 내내 사랑스러웠던 이유도 그녀가 배역을 위해 살을 찌웠다는 사실 때문이다. 45kg으로 통일된 여자 연예인들 사이에서 당당히 살을 찌우는 그녀에게 박수를. 그런데 김삼순이 끝날 때쯤 포털을 장식하는 연예기사를 보니 살을 쪘던 그녀는 이미 살을 다 빼버렸다고 한다. 아, 내 사랑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8월 3일치 뉴스에 탄수화물을 억제하고 고기만 먹고 살을 뺀다는 황제 다이어트 용품 판매 회사인 애트킨스 뉴트리셔널사가 파산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곡물을 먹지 않고, 계란, 고기, 베이컨, 치즈 등 기름기가 가득한 입안을 행복하게 해 주는 음식만으로 살을 뺀다는 환상적인 다이어트 방법은 2002년 이후 몇 년간 큰 인기를 끌었었다. 하지만 화무십일홍(), 여러 부작용이 나오고 인기가 시들해지자 결국 회사가 파산한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다이어트 방법이 파산하는 뉴스가 나오는 오늘도 또 다른 다이어트 성공기가 뉴스를 장식하고, ‘다 뺐는데 너만 그대로다’라는 도발적인 광고가 포털에 가득하다. 대한민국의 자본은 살찐 나에게 모든 미디어를 동원해 살을 빼라고 강요한다.
도수 높은 안경에 얼굴을 가린 머리를 한 소녀가 안경을 벗고 머리를 넘기자 최고의 미녀가 된다는 설정은 만화의 익숙한 끌리세다. 요즘은 이런 끌리세가 주로 ‘살이 빠지는 이야기’로 등장한다. 스즈키 유미코의 <미녀는 괴로워>에서 살찌고 못생긴 칸나는 엄청난 거금을 투자해 성형미인으로 거듭난다. 이희정의 <내게 너무 사랑스러운 뚱땡이>에서는 약 한 알로 살이 빠진다. 살찐 나도 살이 빠지면, 뭍 여인들에게 선망을 받는 미남이 될 수 있을까? 어차피 불가능하니 살찐 사람들끼리 연대해 우리들의 세상을 만들어보자고 선동해 볼까?
박인하/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창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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