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04 20:43
수정 : 2005.08.04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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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준 성균관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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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지난달 18일 국무총리는 총리실 간부들에게 차상위계층에 대한 실태 파악에 나설 것을 특별 지시하였다고 한다. 차상위계층은 가구의 전체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20% 이하에 있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대상이 아닌 사람들, 결국 가난하지만 별다른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부실한 사회안전망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우리의 가난한 이웃이다. 차상위계층을 포함한 빈곤층의 숫자는 경기침체와 경제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됨에 따라 최근 몇 년 사이에 크게 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생활고를 비관한 일가족 동반 자살이나 어린이 영양실조 사망과 같은 비극적인 사건들은 이게 바로 우리네 현실임을 잊지는 말라는 듯 어느 날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다.
그런 만큼 이들 차상위계층에 대한 사회복지 정책은 시급하다. 정책을 마련하려면 이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와 같은 기초적인 사실이 먼저 파악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이런 기초적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공식적인 통계자료가 아직 없다. 총리가 직접 나서서 서기관급 이상 간부직원들로 하여금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의 빈곤층을 직접 면담해서 실태를 파악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더운 여름에, 맡겨진 다른 모든 중요한 일들은 접어두고 차상위계층의 실태 파악에 직접 나선 총리실의 서기관급 이상 간부 200명과 그런 특별 지시를 내릴 만큼 빈곤층에 애정을 가진 총리께 우리 모두 감사한다는 말씀을 드리자.
그런데 말이다. 총리께서 고군분투하고, 총리실의 간부급 공무원들이 땀 흘릴 동안 정부의 다른 기관들은 뭘 하고 계시는지 궁금하다. 차상위계층에 대한 정책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 정책 운용에 필요한 기초 통계자료를 산출하는 통계청, 정책입안에 필요한 각종 연구자료를 만드는 국책연구기관은 뭘 하느냔 말이다. 국내 문제를 총괄하는 만큼 총리실에서 빈곤층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차상위계층의 실태 파악과 같은 일은 해당 부처와 국책연구기관이 더 잘할 일이지, 총리실의 간부급 공무원들이 나설 일은 아니지 않은가. 실효성이 있을지도 의문스럽다. 이분들이 사는 동네에 얼마나 많은 빈곤층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쏟아내는 하소연의 경중을 어떻게 가려내고, 뭐라고 대답할지 궁금하다. 하긴 높으신 분들이 오셔서 답답한 내 사연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순 있고 그게 정치엔 유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정책엔 적절하지 않다.
총리실 공보수석에 따르면, 총리께선 보건복지부의 용역을 받고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낸 차상위계층에 대한 실태조사 자료가 정책입안에 유용하지 않다고 판단하시고 이런 지시를 내리셨단다. 언론은 이 실태조사의 중간 추계 결과 우리나라 빈곤층이 500만 명을 훨씬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이 규모는 정부가 통상적으로 추계해 온 빈곤층 규모보다는 훨씬 크다. 정부로선 당혹스러울 것이고, 따라서 이 자료가 정책입안에 유용하지 않다고 판단한 이유가 무엇일지는 쉽게 짐작되는 바이다. 누구보다도 서민의 편에 서 있음을 자부하는 참여정부에 대한 이런 상상은 대단히 불손한 것이지만, 만의 하나라도 총리의 특별 지시가 실태조사에서 추계된 빈곤층의 규모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면 이는 용서받을 수 없다. 이런 행태는 참여정부가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정책 입안의 투명성과도 거리가 멀 뿐더러 유능한 간부급 공무원들의 귀중한 시간을 죽이고, 국책연구기관의 실태조사에 투입된 예산을 낭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홍경준/성균관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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