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09 17:58
수정 : 2005.08.10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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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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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전반전 끝을 알리는 호루라기가 울릴 시점이 가까워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도 이제 보름 남짓 지나면 절반을 넘어선다. 이제는 지나 온 날보다 남은 날이 적어지는 때가 온 것이다.
이른바 ‘임기 반환점’을 돌 무렵이면 대통령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증후군’이 있다고 한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는데 아직 이뤄놓은 게 많지 않다는 초조감, 권력의 정상에서 하산할 날이 가까워오는 데 대한 아쉬움, 그동안의 국정운영 경험에서 온 자신감 등이 묘하게 뒤섞이는 시기다. 특히 재임기간 안에 큰 선거가 남아 있을 경우 ‘레임덕’에 대한 두려움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입으로는 ‘초심’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지만 실행은 말처럼 쉽지 않다.
과거 사례에 대입해 보면 임기 중반을 맞은 노무현 대통령이 처한 정치환경은 김대중 전 대통령보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에 가까운 듯하다. 10년 전 이 무렵, 김영삼 대통령은 심각한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그해 6월 지방선거에서 참패했고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도는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김 대통령은 이반된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 그해 8월 광복절을 맞아 사상 최대 규모의 대사면을 했다. 그리고 그해 가을 박계동 의원의 폭로로 촉발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은 이른바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이름의 과거사 청산 작업으로 이어지면서 정국 대반전의 기회가 됐다.
10년 전과 현재를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여당의 선거 패배와 지지도 하락, 국민 화합을 명분으로 한 대사면, 예상치 않은 돌출변수에서 비롯된 과거 청산 작업 등 정국이 흘러가는 모양이 상당히 닮은꼴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최근 들어 노 대통령의 정치 발언 빈도가 부쩍 잦아졌다. 굳이 대연정론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노 대통령의 최대 관심이 정책보다는 정치 쪽으로 이동하고 있음은 여러모로 감지된다. 노 대통령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외교나 경제를 제일 잘할 것이라고 국민들이 저를 뽑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임기 초 “김영삼 정부 때는 코드분할 방식의 휴대전화로 국민을 먹여 살렸고, 김대중 대통령은 정보통신 산업으로 먹여 살렸는데, 나는 무엇으로 먹여 살릴지 걱정”이라고 고민했던 것과 견주면 큰 차이가 있다. “살림살이 업적에서 이전 대통령에 비해 어디를 잘못했는지 토론해 보자”고 항변하고 나선 대목은 그가 전임 대통령들과의 비교의식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음을 보여준다.
핵폭풍으로 다가온 불법도청 사건도 마찬가지다. 이 사건의 중요성은 10년 전 역사 바로세우기에 못지 않다. 이땅에 다시는 불법도청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당위적인 명제다.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과거 청산 작업은 미묘한 정치적 후폭풍을 동반하기 쉽다는 점이다. 정치권 한쪽에서는 음모론까지 제기하며 정치적 이용 가능성을 경계하지만, 따지고 보면 대의명분과 실리가 함께 가는 것이 정치의 요체이기도 하다.
문제는 대통령의 임무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 역사 바로세우기 작업은 다음해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하는 견인차가 됐다. 하지만 선거에만 이기면 뭐 하는가. 결국 임기 종반 구제금융 사태를 맞으면서 김영삼 대통령은 실패한 대통령으로 끝났다. 바로 이 대목이 노 대통령이 유의할 지점이 아닐까 한다. 정치지형 변화도 좋고 큰정치도 좋지만 힘없고 어려운 백성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노 대통령이 임기가 끝날 때까지 놓지 말아야 할 화두가 아닌가 한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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