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10 20:04
수정 : 2005.08.1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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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휘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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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다음 보기 중에서 ‘카우치’를 가장 잘 설명한 것은? (복수응답 가능) ① 펑크 음악 ② 인디 밴드 ③ 홍대앞 클럽 ④ 누드 시위 ⑤ 나체주의 ⑥ 바바리 맨 ⑦ 정신 이상 ⑧ 음란 공연 ⑨ 마약 복용 ⑩ 패륜아. 일명 ‘카우치 쓰나미’는 이런 보기들을 두고 이뤄진 한판 힘겨루기다.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어떤 조합을 선택해서 무슨 이야기를 공급하는지에 좌우되는 끼워맞추기. 응시자는 경찰, 방송, 신문, 네티즌, 홍대 앞 문화 종사자들이다.
알다시피 경찰은 출발부터 ⑧ 음란 공연으로 단정했고 ⑨ 마약 복용 가능성을 슬쩍 흘리면서 ③ 홍대앞 클럽에 대한 일제 단속으로 수사를 확대하는 수순을 밟았다. 서울 시장이 블랙 리스트 운운한 발언도 같은 발상이다. 만약 ‘카우치’ 사건을 해프닝으로 처리했다면, 경찰과 서울시라는 공권력의 존재감은 극히 미미했을 것이다. 공권력의 행사란 주목받은 하나의 사건이 우발적이거나 일회용이 아니라 광범위한 온상을 갖고 있다고 가정할 때 가장 빛난다.
다음은 방송사. 문화방송(MBC)은 발빠르게 ‘카우치’를 고소함으로써 피해자 방송사와 가해자 ‘카우치’의 대립 구도를 만들었다. 한국방송(KBS) ‘연예가중계’의 고압적인 ‘카우치’ 인터뷰 장면을 보면 방송사들은 가해자 인권을 무시할 만큼 성난 피해자 같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마치 ① 펑크 음악에 우호적이었고 ② 인디 밴드를 홍보해줬는데 어느 날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행동했다. 과연 그럴 자격이 있을까. 방송사들이 선택한 보기는 오직 ⑩ 패륜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신문들은 한술 더 떠서 ③ 홍대앞 클럽의 ⑧ 음란 공연을 색출하려고 흥분했다. 홍대앞의 댄스 클럽과 인디 밴드들이 공연하는 라이브 클럽을 하나인양 의도적으로 뒤섞고, 이 마저 부족했는지 강남의 흐느적거리는 나이트클럽까지 덧붙여 악의적으로 보도했다. 반면 네티즌은 ‘카우치’를 두고 ④ 누드 시위 ⑤ 나체주의 ⑥ 바바리 맨 ⑦ 정신 이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진위를 가리려고 했고, 소수는 ① 펑크 음악 ② 인디 밴드에 대한 진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카우치 쓰나미’가 남긴 가장 큰 상처는 홍대 앞 문화를 사랑해온 이들의 심리적 공황일 것 같다. 만약 ‘카우치’가 이상한 신념이라도 갖고 ④ 누드 시위를 했다거나 ⑤ 나체주의가 생활 신조라서 행동했던 것이라면 또 모를까, 그냥 벗었다니 할 말이 없었지 싶다. 그럼에도 홍대앞 문화 종사자들이 자청해서 국민 앞에 ‘죄송합니다’는 기자 회견을 했던 까닭은 ‘카우치’를 대신한 사과가 아니라 공권력과 방송사와 신문이 유포한 낭설들이 억울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힘겨루기에서 분명해진 점은 ① 펑크 음악과 ② 인디 밴드와 ③ 홍대앞 클럽의 힘이 참으로 미약하다는 것이다. 해서 ⑦ 정신 이상 ⑧ 음란 공연 ⑨ 마약 복용 ⑩ 패륜아로 덮씌우는 마타도어에 속수무책이었다. 얼마나 속상했을까. 그래도 내가 아는 홍대앞 문화는 감옥에서 돌아올 ‘카우치’를 581개 밴드의 일원으로 품어줄 유일한 곳이다. 상업주의와 권위주의가 판치는 대한민국에서 홍대앞은 다양성이 평화 공존하고 타인의 존재를 관용하는 거의 유일한 동네이기 때문이다.
김종휘/문화평론가 하자작업장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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