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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10 20:17 수정 : 2005.08.10 20:18

사타르 카셈 팔레스타인 나자대학 교수

세계의창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는 1967년부터 이스라엘이 점령해온 가자지구로부터 철수하겠다는 용감한 결정을 내렸다. 지난 몇년 동안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가자 점령이 비용만 많이 드는 짐이기 때문에 이스라엘군이 철수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가자지구는 365㎢밖에 안 되는 작은 지역이지만 사람이 약 130만명이나 살고 있다. 이 때문에 최첨단 장비를 갖추고 잘 훈련된 이스라엘군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이곳은 인구와 집들이 빽빽히 집중돼 있기 때문에 무장 저항세력을 진압하기 위한 군사 작전과 전술을 펼치기가 매우 어렵다. 이 지역은 원시적인 도구와 전술에 의지한 저항세력들이 활동하기에 알맞은 장소이고, 탱크나 중무장한 군차량이 움직이기에는 장애가 많은 곳이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이 이스라엘과 싸우기로 결심한 1970년대 초반부터 낮에는 이스라엘군이 이 지역을 장악한 것처럼 보였지만, 밤이면 저항세력이 주인인 것처럼 보였다. 이스라엘은 통제권을 강화하기 위해 더 많은 군대가 필요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 된 이스라엘 정착촌들이 이곳저곳에 세워지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의지를 꺾기 위해서 살인, 체포, 토지 몰수, 주택 파괴, 나무 제거, 폭행, 집단처벌 등 각종 조처를 동원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런 조처들 때문에 심한 고통을 겪었지만 여전히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굴복할 생각이 없다.

샤론 총리는 총선 기간 동안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에 두루 이스라엘 정착촌을 세우겠다고 공약했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으로 점령한 땅을 이스라엘 영토로 간주하는 그의 신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신념 때문에 그는 우파 정당과 연정을 구성할 수 있었다. 그는 100일 안에 팔레스타인인들의 대 이스라엘 봉기(인티파다)를 박살낼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는 어떤 가혹한 조처를 쓰더라도 인티파다를 끝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실망하게 됐다.

샤론은 그의 신념을 고수하던가, 정치적 현실에 굴복하던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 팔레스타인의 저항은 더욱 심해져 그는 자신의 공약과 모순되게 요르단강 서안 안에 분리장벽을 설치해야만 했다. 그는 이 분리장벽과 가자지구 철수를 통해 안보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가자지구 철수 결정은 그의 연정에 소동을 일으켰고 결국 연정을 분열시켰다. 그러자 그는 가자 철수를 지지하는 야당 노동당의 협조를 얻어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쪽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 발생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철수에 항의하면서 이스라엘이 공동으로 일을 추진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자치정부는 가자 철수가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의 승리로 비치는 것을 우려하면서 자치정부가 협상을 통해 얻어낸 결과물로 보이길 원했다. 이스라엘이 자치정부와 대등한 관계로 협력한다면 무장단체를 정부가 통제하는 조직으로 만드는 데 자극이 될 수 있다고 정부 쪽은 여겼다. 이스라엘은 자치정부에 무장단체의 무장을 해제할 것과 저항을 계속하는 사람들을 투옥할 것을 요구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은 자신들이 가자를 해방시켰다며, 요르단강 서안도 해방시키고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회복할 때까지 계속 투쟁할 것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무장단체들은 자치정부가 이스라엘의 요구대로 팔레스타인인들을 억압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견들 외에도 미국과 이스라엘의 압력 때문에 자치정부는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을 발사하는 하마스 지도부에 총격을 가했고, 자치정부와 하마스 사이에 제한적인 전투가 발생했다. 자치정부가 이스라엘과의 협력을 고집한다면 내전까지는 아니더라도 팔레스타인 내부의 싸움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사타르 카셈/팔레스타인 나자대학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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