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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호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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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얼마 전 온나라가 ‘삼순이’ 증후군에 푹 빠져있을 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게 하나 있었다. “평범한 여자들에게 용기를 심어줬다”, “뚱뚱하고, 못 생기고, 바로 내 이야기”. 비록 김선아가 서른 줄이고, 일부러 살을 찌웠다고 하나, ‘낯선 여자’였던 그가 자기랑 비슷하다니…. 제 정신인가? 나는 아내를 포함해 ‘삼순이’보다 더 예쁜 여자를 본 적이 없다. 내 주변만 유독 그러한 진 모르겠지만. 거대한 집단최면이요, 어마어마하게 높아진 눈높이다. ‘삼순이’ 정도 되지 않으면 ‘평범’ 축에도 못끼는 이상한 세상이다. 요즘 논란중인 부동산 대책을 보면서도 이와 비슷한 느낌을 갖는다. 현재 부동산 대책의 중요한 쟁점 가운데 하나는 종합부동산세 적용 대상을 지금처럼 9억원 이상으로 하느냐, 6억원 이상으로 낮추느냐다. 한국조세연구원 자료를 보면, 현 종부세 대상은 서울 전체 가구의 3.26%인데, 6억원 이상으로 낮추면 8.50%로 늘어난다. 전국적으로는 아마 2%대 이하일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2%들을 위하느라 무척 애쓴다. ‘종부세 적용대상 확대’ 반대를 주장하는 보수 언론들이 무기고에서 꺼내드는 칼은 손수 벼린 ‘조세저항’이다. ‘저항’이란 단어가 이처럼 부적절하게 쓰인 곳이 있을까? 마치 ‘양심적 납세거부자’ 이미지다. 그렇다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과 똑같이 대우해주면 될 것을 무슨 민란이라도 날 것처럼 떠든다. 종부세는 도대체 얼마를 내기에 이토록 논란이 되나? 지난해 11월19일 국정브리핑 자료를 보면, 기준시가(실제 거래가격이 아니다) 9억2000만원의 집을 가진 사람이 올해 내야하는 종합부동산세는? 5만원이다. 보유세율을 보자. 우리나라의 주택 보유세율은 평균 0.15%로 세계 최저수준이다. 미국은 우리의 10배다. 애초 정부 방안은 2017년까지 1%로 올린다는 것이다. 강산이 한 번, 정권이 두 번 바뀌어야 그날이 온다. 부동산 관련 세금을 올리고, 전매제한 등 규제 강화 방안에 대해 보수 언론·경제학자들은 한 목소리로 외친다. ‘반시장적’이라고. 대안은 ‘시장원리’다. 경제학원론 ‘수요·공급 곡선’을 그리며, 공급‘만’ 늘리면 된다고 가르친다. 사례도 든다. 노태우정부의 주택 200만호 공급을. 협박도 한다. 집값 폭락하면 일본식 장기불황 온다고. 200만호 건설 당시, 집값이 잡힌 건 사실이다. 그러나 수요·공급 법칙에 따라 매물이 사라진 다음(분양이 끝난 뒤), 집값은 다시 오르고, 수도권은 터져나갔다. 우리나라의 주택보급률은 2002년 100%를 넘었다. 그런데 주택 자가점유율은 1970년 71.6%에서 2000년 54.1%로 오그라들었다. 한국은행 집계를 보면, 현재 시중 부동()자금은 421조원이다. 공급으로 집값을 잡으려면, 분양가 2억원짜리 아파트를 210만채 지어야 한다. 4인 가족 기준으로 820만명이 수도권으로 추가 유입된다. 그들이 너무도 쉬운 이 논리를 모를 리 없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부동산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려면 ‘주민증 까고’(주소 확인 차원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 지론이다. 9억원이냐, 6억원이냐를 논의하는 이 시간, 전체가구의 8%인 112만 가구가 단칸방에 살고 있다.(한국개발연구원 조사) 더이상 ‘부자에 의한, 부자를 위한, 부자의 정책’이 나오지 않도록, 프랑스 혁명 초기 때처럼 삼부회라도 소집해야 하는 건가? 삼순이가 아닌, 사순이, 오순이들도 봐달라. 한덕수 부총리는 최근 클린턴정부의 극빈층 대책을 눈여겨 본다고 했다. 앞으로 어떤 정책이 나올지 두고 보자.권태호/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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