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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14 17:37 수정 : 2005.08.14 17:39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세상읽기

오늘은 일제의 지배에서 우리나라가 해방된 지 60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 60년은 해방에 연이은 국토분단을 시작으로 하여, 한국전쟁, 군부독재 등 비극적인 일들을 거치면서 또 한편으로는 세계 역사상 두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기도 한, 격변의 시기였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해방 이후 역사에 대한 재평가에 대한 논쟁이 첨예한 것은 바로 이 시기가 이렇게 ‘복잡한’시기였기 때문이다. 평가 대상이 되는 시기가 복잡하다 보니, 어떤 면을 어떻게 평가하고 그 비중을 어느 정도 두느냐에 따라 전반적인 평가가 매우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방 이후 역사의 재평가에 있어 경제발전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독재와 부정부패, 인권탄압을 정당화했던 과거의 ‘기득권’ 세력에 대한 심판은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걱정스러운 것은 이러한 ‘기득권’세력의 심판 과정에서 우리가 이룬 경제발전이 지나치게 폄하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심지어는 독재와 부패 속에서 이루어진 경제발전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경제발전이 과연 그렇게 의미 없는 것인가?

측정 방법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지난 60년간 우리의 1인당 소득은 20~25배 가량 증가하였다. 1인당 소득이 아프리카 평균에도 못 미치던 나라가 말석이나마 선진국 대열에 끼게 된 것이다.

그러나 경제발전은 ‘돈이 더 많아졌다’는 사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경제발전은 삶의 질을 바꾼다. 두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1940년 일제 하에서 우리나라의 1세 미만 유아 사망률은 1000명당 107명이었다. 지금 우리나라의 유아 사망률은 1000명당 5명으로 일본, 스웨덴 등 (3명) 보다는 높지만 미국 (7명) 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우리 조부모들만 해도 아이 열명을 낳으면 그 중 하나는 돌 전에 죽는 슬픔을 안고 살아야 했지만, 이제는 유아 200명 중에 1명만이 돌 전에 죽는다는 이야기이다. 경제발전이 되어 국민의 건강과 위생상태가 개선되고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으면 이루지 못했을 일이다.

경제발전이 되었기에 수돗물과 전기가 집집마다 들어오고, 세탁기, 청소기 등이 광범하게 보급되었으며, 외식산업이 발달하면서 필요한 가사 노동의 양이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주부들이 그만큼 육체적인 고통을 덜 받고 여가시간을 더 많이 갖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에 따라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이 쉬워지면서 이를 통해 여성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면서 남녀관계도 훨씬 평등해졌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경제발전은 우리 사회에 대단히 긍정적인 변화들을 많이 가져왔다. 단순히 돈이 더 많아졌다는 것이 아니다. 더 깨끗한 환경에서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고, 집 안팎의 일이 모두 육체적으로 덜 고통스러워졌으며, 어린 자식을 잃는 비극도 훨씬 덜 겪게 되고, 남녀 관계도 더 평등해지는 등 엄청난 삶의 질의 개선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우리 경제발전 과정에 그늘도 많았다. 세계 1위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고, 독재와 인권탄압도 큰 문제였다. 남녀평등, 소수자 권리, 부정부패 등의 문제도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물적 소비수준, 건강과 수명, 일상생활의 안락함, 노동환경, 정치, 인권 등 상이한 요소들을 종합하여 한 시대를 평가하는 것은 어렵고 정답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경제발전이 가져 온 삶의 질의 향상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해방 이후 지난 60년의 역사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장하준/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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