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15 19:09
수정 : 2005.08.15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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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립 경성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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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한 상태에서 핵 개발을 몰래 한 ‘전과’가 있는 북한은 경수로조차도 가져선 안 된다는 미국과, 핵무기는 포기해도 경수로는 가져야겠다는 북한이 맞선 6자 회담이 휴회 중이다. 이 시점에서, 북한이 핵확산 금지조약에 복귀하고 핵사찰만 받는다면 평화적 핵 이용은 할 수 있다는 통일부 장관의 발언이 나왔다. 국제법상 틀린 말은 아니지만, 미묘한 때에 미국을 향해 던진 한국 정부의 계산된 엇박자임이 틀림없다. 따라서 그 득실도 미리 계산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도 평화적 핵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막연한 원칙론만으로는 북한의 평화적 핵 활동조차 허용할 수 없는 미국의 심리적 마지노선을 공략할 수 없다.
미국 본토는 불가침이라는 미국의 국가적 신념은 2001년 9월 11일이 아니라 1814년 8월 24일에 이미 깨졌다. “해질녘 휘날리던 성조기를 작렬하는 포탄의 붉은 섬광이 지나간 새벽 여명에 다시 보게 되는” 감격으로 시작하는 미국 국가는 워싱턴을 침공한 영국군이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을 불태운 바로 이날의 전투가 배경이다. 지구 반대편의 적까지 미리 날아가서 치는 21세기 미국의 원초적 본능도 ‘한 줌의 영국군’에 의해 수도를 유린당한 1814년의 수모를 다시 겪지 않겠다는 미국 안보의 독특한 전통이 되살아난 것일 뿐이다. 미국의 역사도 독립 직후의 신생 미국을 둘러싼 영국, 프랑스, 스페인의 영토를 전쟁과 매입을 통해 계속 미국 영토로 편입시킴으로써 미국을 위협할 외세가 북미 대륙 안에 존재하지 못하게 막아온 예방 안보의 역사 그 자체다. 현대의 미국에 이런 미국이 숨어 있다.
특히 9·11 테러는 백악관까지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 ‘1814년의 수모’를 재현한 것이다. 그 전에는 옛소련과 파키스탄의 핵 유출 문제에 대해서 느슨하던 미국 정부가 ‘9·11’ 이후 중동과 북한에 최강의 군사제국답지 않은 소심증과 강박증으로 일관하는 까닭은 9·11 테러로 되살아난 1814년의 콤플렉스 때문이다.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지 않은 인도한테는 핵기술 지원까지 약속하면서 북한한테는 경수로조차 거부하는 이중 잣대가 미국으로서는 ‘정당한’ 것도 이 맥락에서다. 따라서 북한이 모든 핵을 포기하면 미국은 북한의 안보를 보장한다는 기본 합의에 도달한 지금, 앞으로 북한이 상대할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자체를 겁내는 미국이 아니다. 북한의 핵물질이 유출되어 또 다른 대미 테러에 사용될 가능성을 겁내는 미국이다.
테러의 천적이 자유라는 부시 행정부의 신념을 비웃기라도 하듯 ‘민주화’하고 있는 이라크에서 테러는 더 격해지고 양질의 자유를 누리는 영국 시민에 의해 런던 테러가 자행된 마당에, 게다가 이란 핵 문제마저 미국을 골치 아프게 만들고 있는 시점에서 미국도 일단 ‘북한 민주화’ 이전에 북한 핵의 유출 가능성 차단을 우선 목표로 삼고 한 발 물러섰다. 이것이 제4차 6자 회담의 본질이다. 그래서 현재 북핵 고비의 해법은 어렵지만 간단하다. 미국이 ‘안심하게끔’ 북한의 경수로를 관리할 묘책을 미국에 제시하든지, 아니면 북한의 체제 안보와 에너지 주권을 함께 보장할 ‘핵 보유 이외’의 비책을 북한에 제시하든지 둘 중 하나다. 상대가 상대를 절대 불신하고 어느 한쪽이 그냥 양보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이 고비를 넘어갈 다른 길은 없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면서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전환시키고 거기에 6자 회담 당사국들의 ‘평화 발전소’를 지어 공동 관리하는 동화 같은 꿈도 그래서 꾸게 된다.
권용립 /경성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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