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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16 17:58 수정 : 2005.08.17 00:16

곽병찬 논설위원

아침햇발

8·15를 즈음해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 하나가 있다. 역사상 가장 야만적인 범죄로 기록될 일본군 731부대의 만행이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의 연구단체에선 생체실험을 당한 3000여명 가운데 1463명의 신원을 밝혔다. 일본의 한 연구자는 부대장 이시이 시로와 책임자들이 실험 결과를 미군에 제공한 대가로 처벌은커녕 거액의 자금과 선물 따위를 받았다는 자료를 공개했다.

<문화방송>은 15일 밤 9시 ‘뉴스데스크’에서 731부대의 생체실험 영상을 보도했다. 주사로 세균을 주입하는 장면, 세균이 섞인 음식물을 강제로 먹이는 모습,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장기를 적출하는 화면 등이 방영됐다. 전해지는 바로는 이보다 더 참혹한 일들이 많았다. 산 채로 냉동고에 넣어 얼어 죽게 하거나 감염된 임신부에게서 태아를 적출하고, 증상을 확인하기 위해 시간대별로 생체를 절개하기도 했다고 한다. ‘인간 내면 어디에 저런 야만이 숨어있는 것일까.’ 참담한 의문에 괴로워한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온전한 걸까. 황우석 교수는 복제 개 스너피의 탄생과 그 효용성을 설명하며 ‘질환 모델 동물’의 생산을 거론했다. 사람을 대신해 난치성 질환을 앓도록 만들어진 실험용 동물이다. 비만과 당뇨를 앓도록 조작된 쥐가 수십억원에 팔리고, 일반 실험용 쥐도 한 마리에 40만~50만원에 이른다고 하니, 그 효용성은 실로 크다.

 ‘동물실험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카페에는 실험용 암컷 짧은꼬리원숭이 2497401의 삶에 관한 글이 올라 있다. 그에겐 임신상태에서 태아의 바이러스 감염 실험이 집중됐다. 바이러스는 그의 배를 가르고 태아에게 바로 주입되거나, 배를 통해 주사로 주입됐다. 실험자는 시간대별로 이 원숭이 태아의 골수를 채취했다. 3개월이 되던 때 태아는 제왕절개로 적출했다. 그리고 일부는 조직 배양용으로 쓰이고 나머지는 소각됐다. 그에게 이런 실험은 10년이나 계속됐다. 열번째 생일날 다행스럽게도 바이러스 감염 사실이 밝혀졌고 그날 고통을 끝내고 폐사된다. 그는 백혈병 이외에 대장염과 림프샘 비대증까지 앓고 있었다.

2000년 우리나라에서 죽어간 실험동물은 400만 마리로 추정됐다. 미국은 3000만 마리, 전세적으로는 2억 마리로 알려졌다. 이들은 세균실험과 독성실험, 극저온 초고온 실험, 전기충격 실험, 스트레스 실험, 종양 배양 끝에 폐사된 생명이다. 실험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실험자들은 대부분 인간이 질병과 고통에서 해방되는 날을 꿈꾸며 실험한다. 그 꿈과 목표는 인도적이다. 내용이 비슷하다고, 사람을 값싸고 효과적으로 죽이기 위해 살아 있는 사람을 실험했던 731부대와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실험자들의 꿈이 인도적이라고 해서, 인간을 위해 죽어간 또다른 생명에 대한 예의를 다했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 생명공학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또다른 생명에 대한 윤리는 최악이라고 한다. 실험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도록 입법하는 것은 우리 공동체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다. 나아가 인간의 현충일처럼, 공동체를 위해 희생된 실험동물의 고통과 죽음을 기억하는 날의 제정도 생각해볼 만하다.

 그날이 되면 국가적 차원에선 실험동물을 위한 추모 행사가 펼쳐진다. 민간 차원에선 소·돼지·닭·개 등 우리에게 피와 생명을 나눠준 모든 동물들을 기억하는 행사가 가정, 음식점, 요식업협회 등에서 펼쳐진다. 예술가들은 다양한 연희와 굿, 노래와 연극으로 인간과 동물의 화해를 기원할 것이다. 그리하여 생명과 생명이 하나되어 나아가는 것,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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