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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17 20:53 수정 : 2005.08.17 20:55

조홍섭 편집국 부국장

조홍섭칼럼

계속된 무더위로 에어컨은 없어 못 팔 지경이고, 사무실마다 지나치게 틀어대는 에어컨 때문에 겉옷을 갖춰 입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 에어컨을 돌리는 전기의 40% 가량이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온다는 것쯤은 대개 안다. 우리가 눈감고 있는 것은, 전기를 생산하는 곳과 소비하는 곳, 전기 혜택을 누리는 곳과 그 폐기물로 고통받는 곳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서울은 생산하는 양보다 33배나 많은 전기를 소비한다. 동해안과 서해안의 대형 발전소에서 수도권과 전국으로 전기를 실어나르는 송전선로는 지구를 25번이나 감을 만큼 길다. 서울의 자치구들은 저마다 쓰레기 소각장을 지어놓고 다른 곳의 쓰레기 반입을 악착같이 가로막지만, 제가 쓰는 전기를 생산하느라 발생한 원전의 방사성 폐기물은 남의 얘기일 뿐이다. 대도시 사람들은 지역 지원금 몇 푼이 추가된 전기요금을 내고 앞으로도 원자력 전기를 펑펑 쓰면서 ‘참살이’를 노래할 것인가. 이런 불평등을 앞장서 부추기는 곳이 정부다.

지난 3월 지역지원 특별법이 통과된 이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방폐장) 문제가 예사롭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 지자체끼리 방폐장 터를 서로 유치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다. 행여 다른 도에 빼앗길까 정치권에 로비도 한다. 중앙정부의 지원 아래 지자체들은 몇 억원씩의 홍보비를 책정하고 ‘원자력을 사랑하는 공무원 모임’ 따위를 조직해 방폐장 유치에 팔을 걷어붙였다. 군산, 경주에 이어 이번 주 중 울진, 포항, 부안 의회에서 줄줄이 유치동의안이 표결된다. 19년의 난제가 이제 풀리는가.

정부는 지난 연말 방사성 폐기물에 관한 중대한 정책전환을 했다. 그 핵심은 중·저준위 방폐장에는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을 짓지 않으며, 방폐장이 들어서는 곳에는 3천억원의 지원금과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이전 등 획기적인 경제적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안전한’ 시설이 들어오는데다 지역경제까지 살려주겠다는데 마달 지자체가 있으랴.

얼핏 묘책처럼 보이는 이 방안은 중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회적 합의와 주민의 참여로 풀어야 할 이 문제를 돈으로 일거에 해결하려 한다. ‘부안사태’의 교훈은 분명하다. 정부의 일방적인 추진도, 막대한 금전 지원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전력정책 틀 안에서 국민의 신뢰와 참여 아래 투명하게 추진해야, 어차피 이 땅 어딘가엔 지어야 할 방폐장을 얻을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놀랍게도 정부는 시민단체와 1년여 논의 끝에 거의 합의에 이른 사회적 공론화 방안을 걷어찼다. 에너지 정책 차원의 문제가 지역간 이해다툼으로 전락했다. 그 바람에 정작 필요한 논의 곧, 원자력 위주의 전력정책을 계속할지, 방폐장은 왜 필요한지, 방폐장의 안전성은 어떻게 보장할지, 그 지역의 장기발전은 어떻게 보장할지 등은 실종돼 버렸다.

중저준위 폐기물과 사용후 핵연료를 분리한다 해도 안전성 우려를 깨끗이 씻어낼지도 의문이다. 방사능 공포를 방사선의 세기로만 재려는 것은 과학자의 오만이요 단견이다. 일반인은 자신이 통제한다고 믿는 흡연이나 운전의 위험에는 아주 실용적이고 무모하기까지 하지만, 남이 강요하거나 불확실하고 잠재적으로 재앙을 부를 수 있는 위험에는 아주 민감하고 완벽에 가까운 안전성을 요구한다. 지역이 핵쓰레기장으로 낙인찍히는 점도 주민에게는 중요하다. 환경단체는 방폐장 건설이 원전 확대로 이어질지 걱정한다. 오랜 논란 끝에 독일 고어레벤의 방폐장 건설을 포기하면서 니더작센 주지사가 한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방폐장)이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조홍섭 편집국 부국장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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