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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17 20:55 수정 : 2005.08.17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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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환 남상덕 홍범식 나철 서일 박상진. 당신은 이 이름들 가운데 몇이나 알고 있는가? 8월은 ‘광복’의 달이지만 ‘국치’의 달이기도 하다. 위의 이름들은 국치의 한을 못 이겨, 또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우다 이 달에 목숨을 버린 이들의 이름이다.

박승환과 남상덕은 대한제국의 군인이었다. 1907년 7월31일 밤 일제가 조정 대신들을 위협해 군대해산 칙령을 반포케 하고, 8월1일 아침 모든 병사를 동대문 훈련원에 모이게 해 군대 해산식을 강행했다. 이에 참령(대대장) 박승환은 “군인이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가 충성을 다하지 못하면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않다”는 유서를 남기고 권총으로 자살했다. 참위(소대장) 남상덕은 부하 일천여 명을 이끌고 이틀 동안 대치하며 일본군 대장을 포함한 여럿을 사살하고 총에 맞아 순국했다.

1910년 8월29일 국치일에 자결한 홍범식은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의 부친이다. 당시 충남 금산군수였던 그는 망국의 비보를 듣고 북쪽을 향해 절한 뒤 조종산 소나무에 목을 매 자진했다고 한다. 단군교·대종교인으로 구국운동에 앞장 섰던 나철과 서일도 8월에 목숨을 버렸다. 유신회 등 비밀결사를 만들어 기울어가는 나라를 되살리려 애쓰던 홍암 나철은 1909년 단군교를 창시해 민족정신을 고취하다가 1916년 8월15일 구월산에서 목숨을 끊었다. 대한군정부를 창립해 청산리전투 등 무장투쟁을 이끌었던 백포 서일은 21년 8월27일 자결했다.

박상진은 1910년 판사등용 시험에 합격해 평양지원에 발령까지 났으나, 나라가 망하자 가산을 털어 대한광복회를 조직하고 항일운동에 뛰어든다. 그는 독립군 자금 출연을 거절한 친일 부호들을 처단한 혐의로 1921년 8월11일 37살에 대구 감옥에서 사형당했다.

광복을 축하하는 만큼이나, 국치를 씻기 위해 목숨을 버린 이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지영선 논설위원 ys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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