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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18 18:26 수정 : 2005.08.18 19:11

정석구 경제부 기자

아침햇발

한국 재벌이 갈림길에 섰다. 삼성의 ‘엑스파일 사건’과 두산의 ‘형제의 난’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재벌 체제가 벼랑 끝에 몰린 것이다. 특히 두산 사태는 집안 싸움에 의해 불거졌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재벌 체제의 모순이 쌓이면서 내부에서 서서히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조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드러난 재벌 체제의 폐해가 새삼스런 것은 아니다. 안으로 썩어들던 고름이 밖으로 터져나온 것에 불과하다. 당사자들이야 곤혹스럽기 그지 없고, 이번에도 크게 다치지 않고 고비를 어떻게 넘길지 기회만 엿보고 있을 터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방어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본질적인 차원의 고민을 해야 할 때다.

우선은 글로벌화하고 있는 한국경제에서 지금 같은 재벌 체제가 더는 유지될 수 없음을 확실하게 깨닫는 게 필요하다. 재벌들로서야 오너가족들이 똘똘 뭉치면 자기 것을 지킬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런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급변하는 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지배구조를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황제경영, 세습경영, 선단경영을 버려야 한다. 아직도 몇몇 재벌의 오너들은 사실상 황제 노릇을 하고 있다. 계열사 사장을 수시로 갈아치우고, 비자금 조성에 협조하지 않는 월급쟁이 사장은 여지없이 날려버린다. 그러고도 기업을 유지하며 이익을 내고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두산 사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듯이 재벌 세습을 위해 이뤄지는 불법과 편법이 가장 심각하다. 두산의 경우 창업 4세가 두산그룹을 넘겨받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재벌 3세나 4세가 유능한 기업가 유전자를 타고 난 것도 아니다. 삼성도 마찬가지다. 3세인 이재용씨에게 삼성그룹을 통째로 물려주기 위해 에버랜드를 통한 ‘편법 세습’이 이뤄졌다. 이를 정공법으로 풀어가지 않고, ‘법대로’를 외치며 끝까지 버틸 경우 이 문제는 앞으로 두고두고 삼성의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다.

선단식 경영은 자원 배분을 왜곡시킨다는 점에서 하루빨리 개선해야 할 경영 방식이다. 삼성 쪽도 경쟁력 없는 회사까지 잘나가는 몇몇 계열사에 얹혀서 살아가고 있다. 계열사들 사이의 내부거래는 이들의 경쟁력을 더욱 떨어뜨린다. 온갖 경영비리가 드러난 두산의 경우는 차라리 그룹을 해체하고 개별기업으로 갈라서는 게 경쟁력 확보에 더 나을 수 있다.

선단식 경영을 지탱해주는 그룹 구조조정본부의 기능 재편도 필수적이다. 특히 삼성의 구조본은 법적으로 아무런 권한도 없으면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비정상적 기구다. 삼성이 제대로 된 길을 가기 위해서는 구조본부터 재편해야 한다. ‘엑스파일 사건’의 핵심 당사자로 지목되는 이학수 본부장의 사퇴도 함께 이뤄져야 함은 물론이다.

비정상적인 재벌 체제가 유지된 데는 정부의 책임도 크다. 정부가 민간기업의 지배구조에 직접 간여할 수는 없겠지만 관련 규정을 명확히하고, 드러난 불법에 대해서는 엄정히 처리해야 한다. 재정경제부나 금융감독원, 그리고 검찰이 재벌에 얼마나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실정법을 들어 이런저런 변명을 하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재벌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해주고 우리 경제를 멍들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삼성의 ‘엑스파일 사건’과 두산의 ‘형제의 난’이 비효율적인 재벌 체제를 뜯어고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재벌들이야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지길 기대하겠지만, 이번에도 근본 수술을 하지 않고 넘어가면 우리 경제 전체가 나중에 더 큰 타격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정석구 경제부 기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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