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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21 19:44 수정 : 2005.08.21 19:46

유레카

당나라 시인 가도에게 불현듯 시상이 떠올랐다. 가던 길을 멈추고 시상을 글로 옮겼다. “새는 연못가 나무에 잠들고(鳥宿池邊樹, 조숙지변수) 중은 달 아래 문을 민다(僧推月下門, 승퇴월하문).” 흡족했다. 그런데 글자 하나가 마음에 걸렸다. ‘민다(推)보다는 두드린다(敲, 고)로 하면 어떨까.’

가도는 마침 경조윤(수도의 시장) 한유의 행차를 막아서게 됐다. 한유는 당장 내쫓아 마땅하지만, 가도를 불러 사정을 물었다. ‘퇴가 좋겠는가 고가 좋겠는가’라는 물음이 돌아왔다. 대문장가였던 한유에게도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궁리 끝에 한유는 이렇게 답했다. “민다보다는 두드린다가 낫겠구려.”

문장가들은 대개 ‘일필휘지’를 자랑 삼는다. 시인들은 기운 자국 하나 없는 천의무봉의 경지를 고대한다. 당대의 대문장가 소동파는 <적벽부>를 탈고한 뒤 찾아온 친구에게 이를 들려줬다. 친구는 그 웅혼한 기상과 유려한 문장에 찬탄을 금치 못하며, 얼마나 걸렸느냐고 물었다. 동파는 ‘지금 이 자리에서’라고 답했다. 한데 소동파가 앉아 있던 자리가 불룩 솟아 있었다. 퇴고한 원고 뭉치였다. 족히 한 삼태기는 됐다고 한다.

러시아 최고의 문장가 투르게네프(1818~83)는 작품을 쓰면 일단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3개월에 한 번씩 고쳤다고 한다. 안도현 시인은 시 한편 쓰는 데 40~50번 퇴고를 한다고 했다. 퇴고는 문장가에게만 요구되지 않는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법규 이상의 구속력과 영향력을 갖는 대통령의 말과 글에는 더욱 요구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연정이나 시효배제 발언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진심을 알아주지 못하는 세속을 개탄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의 말과 글의 의미를 얼마나 많이 곱씹고, 손질하고, 의견을 구했는지 자문하는 게 우선 아닐까.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 주 3회 실리던 이 난이 이번주부터 월~금 주 5회로 늘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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