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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21 19:49 수정 : 2005.08.21 19:49

홍기빈 캐나다 요크대 박사과정·정치경제학

야!한국사회

‘재벌’이란 본래, 메이지 유신을 거치면서 특권적 자본가로 떠오른 미쯔이나 이와자키 등의 몇 몇 가문이 국가 권력과의 유착을 지렛대로 하여 사회의 생산을 거의 지배하다시피 했던 제국주의 시절 일본 대기업의 소유 지배 구조를 일컫는 말이었다. 무수한 회사들이 지주회사와 상호 주식 보유 등의 방법으로 피라밋 형의 콘체른을 형성하면 재벌 가문은 그 정점에 있는 지주회사의 주식의 일부만 소유해도 전체 기업집단을 모두 지배할 수 있는 전형적인 ‘독점자본주의적’ 기업 체제였다. 그리하여 2차 대전 무렵이 되면 전체 불입 자본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762개의 기업을 4개의 가족이 소유 지배하는 형국이 되었다.

남북 전쟁이 끝난 후의 미국은 온갖 ‘금융기법’을 통해 순식간에 떼돈을 모은 락커펠러, 모오간, 카네기 등의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금력을 배경으로 더욱 더 큰 부와 권력을 싹쓸이 해가는 소위 ‘떼강도 귀족(robber barons)’의 시대로 접어든다. 당시의 미국에는 군부와 관료 등의 지배 엘리트들이 철옹성처럼 단단히 뭉친 일본과 같은 국가 권력이 없었기에, 이들은 국가 권력에 의해 통제를 받아야 했던 일본의 재벌과 달리 마음껏 활개를 칠 수 있었고 오히려 매관매직이나 금권 선거 등의 방법으로 국가 권력까지 접수할 수 있었다. 나아가 대학에 대한 기부나 광고 등을 통하여 사회의 담론과 문화까지 마음대로 지배하여, ‘기업 사회 미국’의 터전을 이미 이 시대에 닦았던 것이다.

소수의 혈연집단이 터무니없이 큰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하는 이러한 전근대적이고 반민주적인 소유 지배 구조는 지구상의 주요 산업국에서 사라진 지 반 세기가 넘는다. 스웨덴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경우 가족적 소유 지배 구조의 흔적이 물론 강하게 남아있지만,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민주주의의 질서를 유지하는 온갖 법적 제도적 장치에 쌓여 있기 때문에 그 나라의 대자본 가문들이 옛날 라커펠러나 미쯔이와 같은 권력을 휘두르는 일은 용납되지 않는다. 그런데 21세기가 밝아온 지금, 20세기 전반의 일본을 틀로 하여 19세기 후반의 미국을 향해 거꾸로 소유 지배 구조가 발전하는 나라가 있으니 바로 ‘삼성 공화국’ 대한민국이다.

개발 독재 시절에 성장한 한국의 재벌 체제가 아예 그 이름부터 일본 제국주의 대자본의 기업 체제를 베낀 것이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며, 소유 지배 구조에 관한 한 이러한 특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이건희 일가는 지금도 0.84%의 지분으로 순환적 상호 출자 등의 수법을 통해 삼성 전체 38개 기업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변한 것이 있다. 민주화를 거치며 자신들을 꽉 누르던 군부 독재 세력이 사라지자 그 소수의 재벌 가문들이 금력을 배경으로 사회 전체의 권력을 쓸어갔던 19세기 미국의 대자본가들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며, 그 재벌식 소유 지배 체제가 그 권력 투쟁에 있어서 핵심적인 무기로 되었다는 것이다. 92년 졸지에 대통령 선거에 차출되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던 ‘현대맨’들을 기억해보라. 정당과 기업과 언론과 검찰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엑스파일’의 내용을 보라. 그리고 사건이 터진 후에 삼성이 대처하는 방식을 보라. 이 모든 어처구니없는 ‘권력 이동’의 현장에는 실로 약소한 지분만으로도 나라 전체의 경제의 작동을 일개 가족이 볼모로 잡을 수 있도록 허락하는 소유 지배 구조의 전근대성과 반민주성이 발견되고 있다.

지난 18일 민주노동당의 심상정 의원은 “‘삼성 공화국’을 넘어 ‘이건희 제국’으로 치닫는 현실을 개혁하기 위해” 재벌식 소유 지배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법적 제도적 노력을 약속하였다.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효율을 함께 가져다 줄 새로운 기업 소유 지배 구조에 대한 토론은 아주 늦은 감이 있다. 심 의원의 노력이 그 값진 시작이 될 것을 기대한다.

홍기빈/캐나다 요크대 박사과정·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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