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22 17:14
수정 : 2005.08.22 17:15
유레카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는 낙오한 남·북한과 미군 병사가 한밤중에 멧돼지를 함께 구워먹는 걸 계기로 화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이 장면은 상식적이지 않다. 마을잔치를 벌이는 게 상식일 텐데, 주민들은 고기에 관심이 없는 듯하고 군인들도 거리낌없이 자신들끼리만 먹는다. 하지만 사실 이 장면은 육식에 얽힌 문화를 절묘하리만치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전통적으로 고기는 남성의 음식이다. 인간이 사냥을 시작한 때부터 사냥의 수확물인 고기는 남성 차지였고 이 전통은 목축이 발달한 뒤에도 변함없다. 성경 레위기에는 제사장과 그의 아들들만 속죄제물인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규정이 나온다. 또 1863년 영국에서 식습관을 조사한 결과, 남성과 여성 식사의 가장 큰 차이는 고기의 양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1, 2차 세계대전 때도 영국에서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이들은 전쟁물자를 생산하는 노동자와 군인뿐이었다. 이는 서구만의 일은 아니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선 전통적으로 남녀의 식사가 구별돼 있는데 여성의 음식에는 단백질 식품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야기다.
남성 힘의 상징인 고기를 마련하려면 피를 부르는 살육이 불가피하다. 그리고 고기를 먹을 때 이 사실을 떠올리는 건 불편하다. 그래서 소·돼지 같은 동물을 고기와 떼어서 생각하려는 경향이 생겨난다고 생태 여성주의자 캐럴 애덤스는 지적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고등 종교들이 과거 실제로 행해지던 살육과 희생 제물을 은유화하면서 피에 얽힌 욕망과 죄책감은 군대의 속성으로 바뀌었다고 미국 작가 마이클 스타인버그는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군대는 종교적 성스러움과 엇비슷한 외피로 치장된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고기를 함께 먹은 세 나라 군인이 동막골을 보호하려고 영웅적인 최후를 맞는 영화의 결론도 예사롭지만은 않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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