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23 17:46
수정 : 2005.08.2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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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한신대 교수ㆍ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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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망대
참여정부가 절반의 임기를 지난다. 흔히 ‘반환점’이라고들 하는데, 지난 길을 되짚어 앞길의 등불로 삼자는 뜻일 게다. 탄식과 폄하도 많지만, 중요한 성과부터 챙겨보자.
참여정부는 국정 원리로 원칙ㆍ신뢰, 공정ㆍ투명, 대화ㆍ타협, 분권ㆍ자율을 내걸었다. 새로운 국정운영방식은 다소간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부패와 특권을 줄이고 투명성을 증대하고 있다. 박정희 모델과 재벌체제의 최대의 취약성은 자신들이 이룩한 성과를 뒷받침하는 윤리가 없다는 것이다. 있다면 “오직 잘 살아 보세”라는 ‘걸인의 철학’ 정도가 있을까. 역사의 종언과 시장경제의 승리를 선언한 후쿠야마조차도, 경제활동에 신뢰와 관습, 도덕, 협동심 같은 사회적 자본과 그 사회의 도덕적 수준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공정경쟁의 제도적 환경을 마련하고 경제윤리를 새롭게 구축하려는 각계의 노력이 활발하다는 것은 참여정부의 나무에 열린 소중한 과일이다.
그러나 달콤한 과일 안에도 독이 자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면 임기 후반 크고 작은 스캔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참여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지금까지의 주된 비판은 분배를 중시한 좌파 정책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비판은 별 근거 없는 것이 많지만, 정부 스스로 제시한 목표를 기준으로 하면, 뼈아픈 곳이 있다. 참여정부의 국정목표는 민주주의, 균형발전, 동북아시대이다. 실제 정부가 역점을 두고 행했던 국정과제는 국가균형발전과 동북아 경제중심 건설이다. 이 두 가지는 국내외 공간을 재배치하려는 의미 있는 시도다. 그러나 정부는 정책 형성과정에서 오해와 실수를 범했다.
‘동북아 경제중심’의 과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동북아시대’는 참여정부가 독창적으로 고안한 개념이 아니다. 한국-미국-일본과 북한-소련-중국의 두 진영으로 확연히 이원화된 국제경제 분업구조가 1980년대 말부터 근본적인 지각변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동북아에 군사적 긴장은 오히려 증대하는 비대칭적 상황이 전개되었다. 분명 참여정부는 공동 번영하는 평화적 민족ㆍ시민국가의 모습을 예지했으나, 그것을 위한 네트워크에 기초한 협력 경제를 설계하는 데에는 추진력을 붙이지 못했다. 국제관계와 남북관계의 재정립, 국내공간의 재편성, 관련 정부조직의 재구성을 연계하지 못했다. 그러니 권력 남용 논란은 권한과 책임을 만들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다.
‘국가균형발전’은 기본적으로 성장정책이다. ‘균형’이란 안정 상태를 의미할 뿐이므로, 공간적 재배치는 ‘불균형’이다. 정부가 분배 또는 분배를 통한 성장을 목적으로 했다면, 재정정책, 조세정책, 노동시장정책, 복지정책 등을 기본 정책수단으로 삼았어야 했다. 참여정부는 성장ㆍ발전의 수단을 산업ㆍ기업보다는 지역에서 구하였고, 이는 새롭고 혁신적인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역거점을 새로이 개발하면서 너무 많은 거점을 설정했는데, 이는 분배율과는 별 관계가 없다. 차기 정부에 대해 부담을 주지 않겠다고 여러 번 다짐했지만, 땅값 상승은 즉각적으로, 과잉중복투자의 부작용은 좀더 시간을 두고 나타날 것이다. 글로벌 시대의 경제개혁은, 가급적 시장친화적인 방식으로 침착하게 공공성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다. 개혁가에게는 공자 말씀을 덧붙이고 싶다. “나는 반드시 일에 임하여 두려워하고 도모하기를 좋아 하며 성공하는 자와 함께 하리라.”(<논어> 술이편)
이일영/한신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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