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24 19:26
수정 : 2005.08.2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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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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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칼럼
삼성 ‘엑스파일’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삼성공화국, 부패공화국, 서울공화국 …. 언뜻 그럴듯한 말들이지만, 공화국의 진정한 의미를 안다면 쓸 수도 써서도 안 되는 조어들이다. 그것은 ‘부패민주주의’, ‘삼성민주주의’라는 말을 사용할 수 없는 것과 같다.
2002년 프랑스 대선 당시 극우파 국민전선의 당수가 결선투표에 나오게 되자, 고등학생 10여만명이 “공화국을 지키자!”는 펼침막을 내걸고 거리시위를 벌였다.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공화국 이념을 통하여 공공성, 사회정의, 톨레랑스, 연대의식 등의 사회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라마다 공화국 이념은 역사과정 속에서 그 내용을 보듬고 채워가는 것이다. 군주제 대안으로 제기된 공화국에 대해, ‘종신이 아니며 세습되지 않는 국가수반의 권력을 원칙으로 하는 나라’에서, ‘자유와 정교분리의 원칙을 기본으로 하는 나라’의 의미로, 나아가 ‘자유로운 시민들이 공익을 목표로 하는 사회로서 법의 권위가 지배하는 나라’에 이르는 여러 개념 규정이 가능한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는 나라의 정체성으로 민주주의와 함께 공화국 이념을 헌법 제1조 1항에 규정하고 있지만, 공화국 이념의 내용을 채우려는 모색과 노력은 거의 없었다. 우리의 근대 공화국의 역사도 60년 가까이 되어 그 대표적인 나라 프랑스의 4분의 1이 넘는 기간을 보냈다면 이젠 적어도 그 어원(res publica: ‘공적인 일’)이 요구하는 공공성만이라도 확보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홍익인간의 이념을 되찾는 뜻도 있을 것이다.
공공성은 궁극적으로 분배의 제도화를 요구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분배를 말하면 ‘붉은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다. 흥미로운 점은 그런 사람들도 ‘나눔’에 대해선 비교적 너그럽다는 사실이다. 나눔과 분배는 똑같은 말인데 왜 상반된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나눔의 반대는 ‘독차지’인 데 비해, 분배의 반대는 ‘성장’이기 때문이며, 나눔은 사적 영역으로서 시혜나 기부의 의미를 갖는다면, 분배는 공적 영역으로서 조세정의 등 제도화를 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보유세, 양도세 강화에 대해 수구언론은 ‘세금 폭탄’이라는 말까지 써가며 조세저항을 부추기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 민주공화국의 구성원이라면, 공교육의 일차적 소명은 무엇보다 사회 구성원들에게 민주적 시민의식과 공공성의 가치를 갖도록 하는 데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교육과정을 장악해온 역대 지배세력은 반공, 안보, 질서, 국가 경쟁력을 강조해 왔을 뿐이다. 그리고 이른바 ‘공기’라는 언론은 독재정권과 자본의 충실한 마름이 되어 공익을 지향해야 하는 소명을 배반해 왔다. 그리하여, 토지 공개념조차 위헌이라고 주장될 만큼 공공성이 실종되면서, 사유재산권이 생존권보다 신성시되고, 삼성 엑스파일 사건이 보여주듯 나라의 공적 부분은 사익 추구의 장으로 변질되었다. 공공성이 실종된 나라의 일그러진 모습들이다.
참여정부는 과거청산을 제대로 하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남은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반민특위가 실패한 뒤 반세기가 넘은 오늘 과거청산이 갖는 의미는 무엇보다 나라의 정체성, 곧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공화국 이념을 올바로 세우고 그 내용을 채우는 데 있다. 그 길은 검찰이 삼성왕국의 경비견 노릇에서 벗어나 공화국 검찰로 거듭나는 것 등을 조건으로 분배의 제도화를 확충해 갈 때 열릴 것이다.
홍세화 기획의원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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