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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24 21:39 수정 : 2005.08.24 21:40

야마무로 신이치 일본 교토대 교수

세계의창

1945년 패전으로부터 60년이 지난 올해 8월, 일본으로선 조선·대만의 식민지 통치, 중국에서의 전쟁 등 역사를 직시해야 할 중요한 시기였다. 그럼에도 우정민영화에서 비롯한 선거전의 소란 속에 역사인식에 대한 논의는 깊어지지 않은 채 날아가버렸다.

게다가 일본의 선거에서 외교문제는 표 획득으로는 연결되지 않는다. 외교를 희생하고 국수적 정서에 호소하는 것이 당선에는 유리하게 작용한다. 이전에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 적도 없고 약소 후보로 불렸던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야스쿠니 공식 참배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은 옛 군인의 유족 등이 결성한 일본유족회의 표를 얻어 집권당 총재가 되기 위해서였다.

4년 남짓된 고이즈미 내각은 전후 4번째로 긴 정권이 됐지만, 야스쿠니 참배로 인해 한국·중국과는 큰 골이 패였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야스쿠니 참배에 반대하는 한국·중국의 여론에 대해 ‘내정간섭’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결속이 강해졌다. 만화 <혐한류>가 붐을 낳는 등 국교 회복 이후 일본과 한국·중국의 관계는 최악의 사태에 이르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광복절 기념식 연설에서 일본의 사죄·반성 등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 기회에 반한 감정을 더욱 부추기려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게 구실을 주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정말로 현명한 배려였다고 생각한다.

내셔널리즘에 호소하고 자민족중심주의로 자존심을 부추기는 것은 확실히 지지율을 높여 표로 연결된다. 그것은 포퓰리즘 정치의 상투 수단이며 민주주의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외교를 희생하는 것은 장기적인 시점에서 볼 때 유해무익한 짧은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내셔널리즘을 부추기는 정책을 취한 고이즈미 정권이 스스로 일본의 국익을 장기적으로 크게 해쳤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외교에선 우선 순위에 근거한 정책들의 정합성이 불가결하다. 일본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이라는 외교 과제에서 실패했는데, 최대의 오산은 미국의 지지마저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고이즈미 정권은 헌법에서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에 해당하는 해외파병을 특별조치법으로 정당화해, 인도 지원의 명목으로 자위대를 이라크에 파견했다. 거기까지 협력한 이상 미국은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해줘야 한다고 생각됐다. 일본 정부는 그렇게 되면 한국·중국 등이 반대해도 다른 아시아·아프리카 나라들의 지지를 얻어 그것을 넘어설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 일변도의 일본 외교 정책을 보는 한, 아시아·아프리카 나라들이 일본이 상임이사국이 된다 해도 미국 추종표가 한 표 늘어나는 데 그칠 뿐이라고 판단하는 것도 당연하다.

분명해진 것은 일-미 외교와 아시아 외교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그 양쪽을 어떻게 조합해 외교 목표를 달성해나갈 것이냐 하는 과제라는 점이다. 이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의미에서는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국도 일본도, 한-미, 일-미의 2국간 관계를 외교의 기축으로 하면서, 어떻게 동아시아에서 지역 안전보장체제를 구축해 공동체를 구상해나갈 것인가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미국은 동아시아가 공동체 구축을 향해서 움직이는 것이 이 지역에서 미국 배제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한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미국을 배제하는 것은, 북한 핵문제 하나만 봐도 생각할 수 없다. 동아시아공동체 또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정과 발전이라는 한층 큰 지역적 틀의 하나로 상정돼야 한다.

올해 12월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처음으로 동아시아정상회의가 열린다. 일찍이 일본이 전장으로 한 동아시아 지역이 공통의 시장으로 바뀌어, 아시아의 사람들이 모이고 교류하는 광장으로서 열리려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나라를 비난해 국수감정을 부추기는 것으로 국민통합을 꾀하는 정치수법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반성과 미래를 향한 국제적 시각에서의 이의 제기가 필요하다.

야마무로 신이치/일본 교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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