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28 18:15
수정 : 2005.08.28 18:16
유레카
‘프린지’(fringe)는 가장자리, 언저리를 뜻한다. 초보, 주변을 의미하기도 하고, 주류에서 이탈한 자라는 뜻도 있다. 복식에서는 바탕천 가장자리의 풀림을 방지하는 술을 말한다. 어쨌든 ‘중심’(center)의 상대말이다. 그런데 이 말이 축제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그 뜻이 전복된다.
2차대전 직후인 1947년 영국은 세계 평화를 기원할 목적으로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국제적인 축제를 열기로 한다. 초청작 중심으로 꾸며지는 고상한 행사였다. 그런데 이 예술제에 물정 모르는 8개의 애송이 단체가 무작정 찾아왔다. 이들에게 허용될 무대가 있을 리 없었다.
이들은 기왕에 왔으니 난장이나 죽이기로 했다. 빈 창고나 지하실 혹은 거리를 무대로 꾸몄다. 직접 거리로 나가 온갖 익살을 부려가며 작품을 홍보하고 관객을 끌어모았다. 이듬해 더 많은 초청받지 못한 단체들이 모였다. 이들은 근엄한 에든버러 국제예술제에 똥침을 날리는 게릴라형 축제를 추진하기로 하고, 에든버러 언저리 축제(프린지 페스티벌)라 이름했다.
지금 에든버러 축제라고 하면 사람들은 프린지 페스티벌을 연상한다. 영화, 재즈, 클래식,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축제가 펼쳐지지만, 프린지 페스티벌은 이 모든 축제를 압도하는 ‘축제 속의 축제’가 됐다. 29일 막을 내리는 올해 6개 중심분야 축제에서 벌어들인 수입은 1억3500만 파운드(2700억원)이고, 이 가운데 프린지 페스티벌의 수입은 7500만 파운드 정도로 추정된다.
중심을 전복시킨 프린지의 힘은 자유·도전·실험정신이었다. 이 정신은 중심의 엘리트주의와 물량주의, 형식과 규범을 거부했다. 중심을 극복하면서도 중심을 닮으려 하지 않고, 중심 이상의 것을 창조하려 했다. 우리 정치사에도 이런 전복은 있었다. 그런데 그 프린지가 새 중심을 창조하기는커녕 옛 중심의 못된 권위와 고집을 답습하니 착잡하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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