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29 18:06
수정 : 2005.08.29 18:07
유레카
서양 고전음악에서 어느 악기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피아노일 것이다. 1700년께 이탈리아인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가 ‘피아노와 포르테가 붙은 쳄발로’를 발명했다. 피아노의 특징은 줄을 튀기는 구조의 쳄발로와 달리 강약 조절이 가능한 점이다. 1730년대에 이 악기를 처음 접한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고음부가 너무 약하다”는 이유로 싫어했다고 한다. 그는 1747년에야 피아노를 받아들였다.
피아노 이후 건반악기에 가장 큰 변화를 불러온 것이라면 아무래도 전자 음향 합성기, 곧 신시사이저일 것이다. 연주자가 소리를 설정할 수 있고 다른 악기 소리를 변형해 표현할 수 있는 신시사이저의 개척자는 미국인 물리학 박사 로버트 모그(종종 무그로 잘못 발음된다)다. 러시아인 레온 테레민이 만든 ‘테레민’이라는 전자 악기에 관심이 많았던 모그는 29살 때인 1963년 실험적인 작곡가 허버트 도이치의 요청으로 신시사이저를 만들었다. 재미로 개발한 이 악기가 뜻밖에 주목받자 그는 65년 회사를 차리고 본격적으로 개발·제작에 나선다.
신시사이저가 대중적 관심을 크게 끈 건, 68년 웬디 카를로스라는 음악인이 모그의 신시사이저로 연주한 <첨단의 바흐>라는 음반이 큰 성공을 거둔 뒤부터다. 이 음반은 100만장이 넘게 팔렸다고 한다. 그 이후 이 악기는 특히 대중 음악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록 음악에 고전음악을 접목시키거나 실험적인 연주기법을 도입한 음악인 ‘프로그레시브 록’은 신시사이저를 빼놓곤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다.
소리의 영역 확장에 크게 기여한 모그 박사가 지난 21일 암으로 71년의 삶을 마감했다. 한때 혁신과 상상력을 촉발하던 신시사이저가 이젠 너무 흔해 진부한 악기가 됐고 전자음악이 넘치면서 ‘언플러그드’ 음악이 등장하는 현실은, 그가 평생 공들인 작업의 성과일까 아니면 실패일까.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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