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30 19:01
수정 : 2005.08.30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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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수 런던대 박사과정·경제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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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망대
“아빠, 영국 친구가 백조는 모두 여왕 것이라는데, 진짜야?” 언젠가 케임브리지 케임강에 떠 있는 백조를 보면서 중학생 딸이 물었다. “그래? 이상하네. 내일 다른 애들한테도 물어봐.” 그렇게 이루어진 ‘영국 중학생 의식조사’ 결과는 한결같은 것이었다. 어떤 아이의 설명인즉, “영국 땅과 물이 여왕 것이니 거기 사는 사슴과 백조도 여왕 것이고, 그래서 누구도 잡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땅과 물을 비롯한 자연은 여왕의 상징적 소유를 통해 국민 모두가 함께 이용하고 즐기는 것이라는 공개념이 어릴 때부터 의식 속에 자리잡은 것이다.
영국뿐 아니라 영연방 국가들에도 형식적일망정 99년 등의 한시적 토지소유 개념이 있는 데가 많다. 99년이 경과한다고 무슨 반환조처가 있는 것도 아니니 ‘허울좋은 공개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사유지일지라도 보행자가 다닌 흔적이 있는 길은 막지 못하게 하는 등 독점적 토지이용을 제한하고, 보유세가 연 1%를 넘는데도 저항이 없는 것은 토지 공개념이 진작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1% 보유세율은 100년 되는 해에 토지가 국가에 귀속된다는 뜻이다.
토지에서 1% 이상 이용수익이 나면 이용하는 사람에겐 큰 문제가 없지만, 소유만 하는 것은 막겠다는 정신이 담겨 있다. 실제로 영국의 많은 토지와 대저택들이 ‘내셔널 트러스트’나 ‘잉글리시 헤리티지’에 기증돼 시민공원이 되는 것은 공개념적 제도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시경에 나오듯이 ‘하늘 아래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없다’( )는 동양의 왕토사상도 토지 공개념에 맥이 닿는다.
이런 전래의 공개념을 크게 후퇴시킨 것이 대륙을 무단 점유한 미국이었다. 헌법 제정회의에서 소수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했는데, ‘건국의 아버지들’이 말한 소수는 본인들, 즉 대지주들이었다. ‘미국 헌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임스 매디슨(제4대 대통령)은 “모든 계급에게 열려 있는 영국 선거제도가 지주의 재산권을 불안하게 한다”며 “정부의 최우선 목표는 다수로부터 부유한 소수를 보호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미국의 ‘소유권 절대’ 원리는 이렇게 헌법정신으로 승격됐고, 그것이 해방 이래 미국을 ‘국가표준’으로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소유권 제도와 관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도 자치단체들이 지방세원으로 보유세를 꾸준히 올려 50개 주의 최대도시들 재산세 실효세율이 평균 1.69%에 이른다.
‘부동산 종합대책’과 관련한 한국 보수언론 보도태도는 동서고금의 ‘상식적 공개념’을 뒤엎는다. 온갖 예외규정을 둬 과세대상이 종합부동산세는 2%, 양도소득세 중과는 3% 미만으로 예상되는데도, 서민들을 피해자로 둔갑시킨다. 사설로 ‘위헌적 공개념 도입을 경계한다’며 미리 일침을 놓기도 했다. 겨우 한 발짝쯤 공개념에 접근한 이번 조처의 험난한 앞날을 짐작하게 한다. 종합대책의 효과로 부동산 경기가 좀 위축되면 전체 경기부진의 주범으로 도마에 오를 것이고, 선거를 앞둔 정치권은 경기부양을 위해 이를 난도질할 가능성이 높다.
가구별 합산과세나 전매제한 조처 등에 위헌소송이 제기되면 보수성향의 헌법재판소가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보수언론은 의제 설정의 주역이 될 것이고, 종합대책도 과거 토지공개념 3법의 운명을 따르게 될지 모른다. 선진국에서 당연시되는 세금과 제도를 도입하는데도 무슨 혁명이나 일어난 것처럼 과장보도를 일삼는다면 제도 정착은 어렵다. 한국은 조세저항 운동이 납세자가 아니라 언론에 의해 시작되는 나라다.
이봉수/ 런던대 박사과정 경제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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